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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자이 오사무의 『인간 실격』과 일본 도쿄 - 책 한권과 떠나는 두 손 가벼운 여행 2편

아시아 · 일본 · 도쿄

문화/명소

여행전문가 칼럼

2019.01.29 조회수1171


MAIN [민음사 문화예술부 편집 담당]


바보 같은 말이지만, 혼자 여행하는 데에 약간의 두려움을 품고 있다. 부팅이 느린 옛날 컴퓨터처럼 임기응변이 서툰 탓일까? 아무리 익숙하더라도 외국어는 또 외국어인지라 제대로 말이 튀어나오지 않거나 순식간에 얼어붙어서 길을 헤매는 일도 적잖다. 그럴 때 누군가가 곁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얼마나 큰 위안이 되는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으리라. 그런데 혼자 다니기에 좋은 곳도 분명 존재한다. 가령 ‘도시 여행’이 그러하다고 할까. 현대적 도시는 저마다 비슷한 모양새를 지닌다. 익숙한 문법을 지닌 외국어처럼 세부적인 부분에선 상이하지만, 거시적으로 들여다보면 친숙한 것이다. 분주한 상업 지구와 도시 외부로 물러선 거주 지역, 마치 혈관처럼 메트로폴리스의 살갗 아래를 가로지르는 수십 개의 지하철, 기시감과 일종의 안도감을 전해 주는 글로벌 브랜드들…… 도쿄는 우리에게 가까운 만큼 전혀 낯설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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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Frankie Guarini on Unsplash


붐비지 않는 나리타 공항을 선호하는 편이지만, 아무래도 도심까지 멀기는 하다. 고속철을 타고 창밖을 내다보며 몇십 분 달리다 보면, 전원적인 풍경이 서서히 잦아들고 낮은 단독 주택이 차차 완만한 등고선을 이루며 번잡한 쇼핑몰과 마천루로 이어진다. 여기가 바로 도쿄다, 라고 선언하듯 처음 얼굴을 내미는 것은 웅장한 ‘스카이트리’다. 날렵하게 하늘로 치솟은 현대의 바벨탑을 건너다보며, 수많은 사람과 그만큼의 꿈과 절망으로 들끓는 도쿄의 풍경을 상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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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은 다른 방향에서 왔을 테지만, 도쿄 대학교에 막 입학한 다자이 오사무도 근대적 대도시 도쿄를 바라보며 온갖 상념에 사로잡혔을 것이다. 그가 태어나 자란 곳은 혼슈의 먼 끄트머리, 아오모리의 쓰가루였다. 무슨 까닭으로 부유하게 되었는지 알 수 없는 자신의 집안을 마음껏 향유하면서도 한편으론 부끄러워했다. 그의 양가감정은 마치 원죄처럼 본원적인 것으로, 그의 일생을 뒤흔들었다. 아마도 ‘인간’이라는 수수께끼, 위선을 미덕을 삼고 사는 이 기묘한 족속에 대한 호기심과 두려움은 다자이를 한평생 괴롭혔다.


다자이가 첫발을 내딛었을 도쿄역을 둘러본다. 비단 그뿐만 아니라,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청춘과 소망, 도시의 불야성에 다 타 버린 환멸에 이르기까지 그곳엔 온갖 것이 뒤섞여 있었으리라. 아까 말했듯이, 대도시는 현대의 발명품이고 그것의 체현이기도 하다. 우주선을 타고 가야 볼 수 있는 달나라처럼, 여전히 에도 시대에 머무른 시골 마을에 비하자면 메이지 유신 이후의 도쿄는 별세계였을 터다. 이 대도시에서 우리는 아무것도 아니다. 다자이 오사무가 줄곧 품어 온 인간에 대한 수수께끼는, 이곳 도쿄에서 질병처럼 그의 영혼을 잠식하기에 이른다. 그는 익명성 속에 단단히 굳어지는 사회적 가면을 이해하지 못했고, 그러한 순수함 때문에 난파하고 만다. 타인의 친절 속에 음흉하게 가라앉아 있는 잔인한 본의를 전혀 해석하지 못했던 그는 돈키호테처럼 허무맹랑한 전투를 계속 이어 갔다. 그 결과는? 인간 실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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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블 시대에 긴자의 땅을 다 팔면 아메리카 대륙을 살 수 있다는 농담 아닌 농담이 있었다. 일찍이 메이지 시대부터 긴자는 현대의 대성당 같은 장소였다. 나쓰메 소세키의 제자 데라다 도라히코도, 긴자 거리에 도열한 고층 건물(지금 보면 아무것도 아니지만!)을 바라다보며 ‘알프스’라 칭하지 않았던가. 인도의 돌멩이 하나조차 현대적이지 않은 게 없을 정도로, 당대의 도쿄는 그곳에 방문한 모든 이들을 현혹했으리라.(물론 시인 이상은 ‘기대 이하’라고 평했다 하지만 말이다. 발자크식 환멸은 아니었을까?) 다자이 오사무는 프랑스를 동경해서 프랑스어문학과에 지원하지만, 도무지 낯선 언어를 따라잡을 수 없었다. 1차 환멸. 그는 프랑스 문학을 배우며 오로지 ‘데카당스’만을 익힌 듯하다. 공산주의 사상에 경도되었다가 또다시 환멸. 부르주아 계급의 자신을 혐오하면서도 그것이 제공해 주는 금전과 안락을 거부할 수 없었다. 마치 속죄를 하듯이, 다자이는 모든 이들에게 휘둘리고 배반당하고, 도쿄의 모든 거리에 돈을 뿌리고 다니며 급기야 마약에 빠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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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vid Clarke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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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에 가면 미타카에 들르는 사람이 많다. 도심에서 벗어난 이 전원도시로 향하는 까닭은 대부분 ‘지브리 미술관’을 구경하기 위해서이리라. 그런데 이 토토로의 마을 같은 곳에, 바로 다자이 오사무의 묘가 있다. 그의 삶을 구구절절 이야기할 필요는 없다. 바로 『인간 실격』이 그의 지나치게 솔직한 자서전이니까. 많은 이들이, 선생님이, 부모님이, 심지어 교과서조차 ‘착한 것’을 상찬하지만, 실상 인생은 그것만으론 굴러가지 않는다. 삶에 요령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끝내 이해하지 못했던 다자이 오사무는 이곳, 미타카에서 투신한다. 누구나 이 사실을 깨닫기까지 격한 성장통을 겪으리라. 그처럼 극단적인 선택은 하지 않더라도 말이다.


여행을 함께하기엔 너무 우울한 책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가끔 우울한 것도 나쁘지 않다. 고독과 삶의 수수께끼를 곱씹고자 한다면, 아름다운 남국의 섬으로 떠나기보다는 나와 전혀 무관한 타인(어쩌면 지옥?)들로 넘쳐 나는 대도시로 향하는 편이 낫다. 거리의 사람들은 일단 웃으면서 나를 반긴다. 자기 가게에서 돈을 지불하길 바라며, 혹은 솔직히 성가시지만 도시의 예의범절이라는 게 그러하니까. 나 또한 가면을 품고 거리를 누빈다. 착하고 솔직한 게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기까지 얼마나 먼 길을 돌아왔던가. 위선을 하나의 미덕으로 받아들여 가는 자신을 굽어보며 인간관계의 서글픈 묘(妙)에 대해 생각해 본다. 그래도 나 자신에게 솔직할 수 있는 그 진심만큼은 영영 잃지 않기를, 어쨌든 속세의 티끌에 검게 물든 자신을 부끄럽게 여기는 그 마음만은 시들지 않기를……. 그래서 『인간 실격』의 마지막 장을 덮을 때, 나는 매번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다. 내가 스스로 죽여 버린 천사의 모습이, 그 마지막 문장에 오롯이 남아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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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3

  • 2019.03.07 댓글

    다시 한번 더 도쿄를 둘러보고 싶네요^^

    • 2019.02.25 댓글

      이 책 안 읽어봤는데 한번 읽어봐야 할 것 같습니다. 이번에 토쿄 갔었는데 날씨가 너무 좋아서 미세먼지가 하나도 없더라구요. 그리고 후지산을 선명하게 볼 수 있어서 참 운이 좋았던 여행이었습니다.

      • 2019.01.30 댓글

        언제나 떠날 수 있는 곳 도쿄 Goooooo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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