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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딴쉐이, 말할 수 없는 비밀의 맛- 요리로 떠나는 낭만여행 15편

아시아 · 대만 · 타이베이

음식

여행전문가 칼럼

2016.11.03 조회수4226


ㅇㄴ 

셰프 민희선

 

대만에 체류하는 내내 날 지독히도 괴롭히던 편도염이 절정을 향해 치닫기 시작했다. 침을 삼킬 수조차 없이 불편했고 편도 부분에 손을 가져다 대면 뜨끈한 열기운이 후끈. 제법 쌀쌀한 12월의 공기로부터 날 보호해줄 정도였으니 타항에서 겪는 병치레가 서럽기 그지 없음이다. 어쩔 수 없이 침대 속만 파고들 수밖에 없던 그 때, 하루종일 이어폰으로 온갖 음악을 찾아가며 플레이 시키고 있던 내게 하나의 OST가 발견되었다. 바로 <말할 수 없는 비밀>의 오리지널 사운드 트렉.

 

대만 최고의 인기 배우 주걸륜이 감독, 극본, 주연에 음악 감독까지 자처한 대만 최고의 청춘 영화인 <말할 수 없는 비밀>은 주걸륜의 실제 경험담이라는 믿지 못할 의심(?) 속에 아련한 기억 속 첫사랑을 소환하며 개봉 당시 잔잔한 화제를 불러 일으켰던 영화다. 특히 세상 훈훈한 남자 주인공 예상륜(주걸륜 역)과 바람 불면 날아갈 듯한 청순미 폭발의 샤오위를 연기한 계륜미가 남녀 주인공 역할을 제법 충실히 수행하며 감수성 짙은 여성 관객들의 눈물샘을 자극하니, 반도의 흔한 처자였던 내 마음도 그 영화와 함께 넘실거렸던 기억. 특히 가장 화제가 됐던 남자 주인공의 피아노 배틀 장면은 음악에 별 감흥이 없는 사람이라도 한 번쯤 눈 여겨보고 듣기에 충분한 명장면으로 뽑힌다. 나 역시 침대 속에서 발바닥을 비비며 그 장면에서 흐르던 쇼팽의 흑건을 이어폰 너머로 듣는 순간, 편도염으로 만신창이가 된 몸뚱이를 이불 밖으로 밀어낼 수 밖에 없었는데 이유는 기억 속 예상륜을 찾아가고 싶어서였다. 대만까지 왔는데..


타이베이에서 딴쉐이면 그리 멀지도 않은 거리. <말할 수 없는 비밀> 촬영장에 도착하면 왠지 영화 속 첫 사랑 예상륜이 특유의 선한 미소를 머금고 날 반겨줄 것만 같다. 딴쉐이에 가면 교복을 입고 자전거를 타고 있는 예상륜을 만날 수 있을까?

 

ㅁㄴㅇㅎ 

 

대만 타이베이의 북쪽 항구도시 딴쉐이(淡水). 우리나라로 치자면 서울에서 서쪽 끝에 위치한 인천과도 같은 작은 항구 도시다. 서울 사람들이 가장 빨리 바다를 볼 수 있는 곳이 인천인 것처럼. 도심 속에서 북적이다 바다가 보고플 때 훌쩍 떠날 수 있는 유일한 곳이 인천인 것처럼. 딴쉐이도 타이베이 사람들에게 그런 존재다. 잔잔하게 펼쳐진 수평선 너머로 도시에서 받은 상처와 고달픔을 위안받을 수 있는 곳. 바로 영화 속 그 곳이다.

 

딴쉐이로 가는 방법은 아주 간단하다. 타이베이역에서 지하철 2호선을 타고 딴쉐이선 종점에서 내리면 되는데 타이베이역에서 걸리는 시간은 40분. 요금은 약 40원 정도다. 실제로 타이베이에서 딴쉐이로 이동해보니 대만 사람들이 부담없이 찾을 수 있는 해안도시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는데, 이 곳은 1600년대 스페인 사람이 지은 '세인트 도밍고 성'이었던 '홍모성'이 있어, 관광이나 유적지로서의 역할도 훌륭히 수행하는 곳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날 딴쉐이를 방문한 목적은 영화 <말할 수 없는 비밀>의 촬영지를 둘러보기 위한 것. 특히 영화의 주 배경이라 할 수 있는 남녀주인공이 다녔던 학교는 빼놓을 수 없는 일등 방문지다. 그 곳은 바로 딴쉐이의 진리대학과 단장 고등학교(淡江高級中學). 딴쉐이에 도착하니 어디선가 예상륜의 자전거 벨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무엇인가에 홀린 듯 나는 진리대학으로 가는 택시에 몸을 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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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시작되면 '음표를 따라 여행을 떠나세요'라는 문구가 등장하며 신비로운 느낌의 악보들이 나부낀다. 시간여행을 모티브로 한 영화인 만큼 관객을 무언가로부터 이끌며 영화 속으로 빨려 들어가게 하는 매력을 한껏 발휘하는데, 진리대학교 입구에서부터 나는 영화 속으로 떠나는 시간 여행자가 된 기분으로 예상륜의 흔적을 찾기 시작했다. 그 시작은 진리대학의 정문이었다.

영화의 상징적인 곳이라할수있는 진리대학의 정문을 지나니 넓은 잔디 운동장이 펼쳐진다. 이 곳은 남자주인공 예상륜이 씩씩하게 도시락을 먹던 장소. 어쩜 저리도 속닥스럽게 음식을 먹을 수 있을까. 별것도 아닌 것에 감탄을 했던 기억이 생경하다. 나는 예상륜이 앉았던 자리에 잠시 앉자 아쉬운 대로 들고 있는 오렌지 음료를 홀짝이며 어딘가에 있을지도 모를 예상륜을 찾기 위해 온 몸의 감각을 총동원 시켰지만 영화가 아닌 현실 속에 그가 있을 리 만무하다.


우리와 학기가 다르게 움직이는 대만은 12월임에도 방학철이 아닌 탓에 많은 학생들이 교정을 거닐었고 다양한 무리의 남학생들은 운동장에서 축구를 하기도 했다. 저들 속에 예상륜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말도 안되는 바보같은 상상을 하고 이번엔 남녀주인공이 거닐던 테라스 분위기의 학교 복도를 찾았다.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싱그러운 단발머리를 휘날리며 뒤를 돌아보던 샤오위가 눈부시게 아름다웠던 바로 그 장소.  그 복도 위에 샤오위가 된 것처럼 발걸음 하나, 손짓 하나하나가 나도 모르게 여성스러워진다. 그 때 마침 쉬는 시간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리고 학생들이 저마다 복도로 쏟아져나오며 고요했던 학교는 이내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한다. 마치 신데렐라의 마법의 깨지는 순간처럼 내 안의 샤오위도 그 종소리와 함께 영화 속 한 장면처럼 아스라히 사라져가는 것만 같다.


학교 구석구석을 돌아보며 영화속 환상에 빠져 허둥거릴 때 관광객들이 저마다 학교 밖으로 나가는 모습이 포착됐다. 무슨 일인가 싶어 경비원에게 물으니 오후 4시 이후에는 모든 관광객들이 학교밖을 나가야 한단다. 영화의 대성공으로 북적이는 관광객을 통제하기 위한 하나의 방편이겠거니 생각하고 나 역시 아쉬운 발걸음을 돌려 교정을 나선다. 다시 한번 느끼지만 꽤 넓고 예쁜 곳이다. 이 곳에 예상륜을 남겨두고 가는것 같아 이내 아쉬웠지만 어차피 손 끝에 닿을 수 없는 그를 어쩌리. 아쉬운 대로 영화 속 남녀 주인공이 거닐던 항구 거리로 발걸음을 재촉해본다.

 

홍모청을 지나 횡단보도를 건너 부두쪽으로 걸어가다보면 야시장 느낌의 노점 음식점들이 즐비한데 이곳은 카스테라가 가장 유명하다. 하지만 그런 카스테라도 잠재울 만큼의 로컬 푸드가 있다면 그건 바로 대왕오징어튀김. 거대한 굵기를 가진 오징어를 바삭하고 고소한 튀김옷에 튀겨낸 이것은 이단 식감에서 기본 이상의 포스를 뿜어낸다. 여기에 달콤짭짜름한 간장마늘 소스를 곁들이면 그 환상적인 맛은 배가 된다. 심지어 근처 편의점에서 구입한 차가운 캔맥주를 곁들인다면 예상륜을 못만난 아쉬움따위는 이미 잊은지 오래. 모두들 카스테라에 푹 빠져 있을 때 대왕오징어튀김을 입안 가득 몰아넣고 딴쉐이를 한껏 만끽하길 강권해본다.

 

ㅁㄴㅇㅎ 


이로써 총 15편에 달했던 <요리로 떠나는 낭만여행>의 긴 여정이 끝이 났다. 요리를 공부하며 느꼈던 수많은 감정들, 감흥들. 사건 사고와 그 속에서 내가 느꼈던 크고 작은 경험들을 써내려가며 잠시 잊고 지내던 초심이라는 단어를 내 가슴 속 깊이 되새길 수 있었던 값진 시간이 아닐 수 없었다. 유학지였던 스페인의 소소한 도시들을 시작으로 파리, 로마, 그리고 대만의 도시들로 이어졌던 내 지난 여정은 잊기 힘든 청춘의 기억처럼 하나의 거대한 훈장으로 가득 채워졌을 거라 믿어본다. 지난 5개월간 내 글을 읽어주고 공감해주신 많은 분들게 감사드리며, 또 다른 글과 음식으로 만나뵙길 기대한다.

 

요리로 떠나는 낭만여행, 이제 여기서 그 여정을 멈춥니다. 모두들 건강하고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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