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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디스(Cadiz: 눈부신 해변도시와 지중해 과일)-요리로 떠나는 낭만여행 4편

유럽 · 스페인 · 세비야

휴양/레포츠 문화/명소 음식

여행전문가 칼럼

2016.06.01 조회수3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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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프 민희선

 

 

스페인 까디스(Cadiz)

 

  - 눈부신 해변도시와 지중해 과일

 
스페인에 여름이 왔다. 처음 이 곳에 도착했던 것이 초봄이었으니까 지구 반대편 유럽 어딘가에서 한 계절을 무사히 보낸, 아니 보내고 있는 것. 그 한계절 동안 얼마나 많은 일들이 있었을까. 유학원에서 커미션 잔뜩 떼먹고 얻어준 비싼 홈스테이 집을 나와 나홀로 방을 알아봤고, 짐이 많아 힘들었지만 뿌듯한 이사도 치뤄냈다. 큰 부담이자 걱정 거리였던 외국인 학생등록증 신청도 완료했으며 자크 채워졌던 입에 옹알이 수준이나마 스페인어가 담기기 시작했던 것도 이맘 때. 덕분에 어딜가나 부족한 스페인어로 그들과 한 두 마디 대화를 시도하면서 스페인 사람들과 소통을 하기 시작했고, 같은 어학원 다른 나라 친구들과 세비야 곳곳을 구경다니기도 했다. 한국을 떠나는 그 순간부터 날 지독히 괴롭히던 향수병에서도 어느 정도 자유로워졌으며 그 나라의 분위기와 문화, 성향들에 비교적 잘 적응해갔고 모든 것이 완벽해 보였지만 단 하나, 날 적응시키지 못한 단 한 가지가 있었는데 그건 바로 더위. 더위만큼은 결코 적응할 수 없는 유일한 장애물이었다.

 

사실 필자는 요리를 하는 사람이니 웬만한 더위에는 끄덕 없는 불의 여인. 폭염주의보가 2주 연속 기승을 부리던 때도 가스불을 30개 이상 틀어놓은 상태에서 꿋꿋이 팬을 돌려댔고 찜통에서 나오는 묵직한 수증기에도 절대 굴한 적이 없음이다. 습하고 후덥지근한, 불쾌지수가 최고조에 달하는 한국의 끈적한 더위에 30년 동안 익숙해졌으니 유럽의 고온건조한 지중해성 더위에는 고개를 뻣뻣이 들고 당당해 할 줄 알았지만 이런 내 호기로운 장담은 세비야에서 첫 여름을 맞이하며 겸허히 고개를 숙이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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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게다가 내가 지내고 있는 세비야는 알고 보니 스페인 뿐만 아니라 유럽 내에서도 가장 무덥기로 악명 높은 곳. 불구덩이 속에서 살아야 하는 게 내 팔자인지 하필 내가 선택한 세비야가 그러했다. 그럼에도 습도 없이 건조하니까 꿉꿉한 한국의 더위보다는 견딜만 하지 않느냐고 묻는 사람들에게 '달궈진 후라이팬 위에서 플라멩코를 추는 기분'을 아느냐고 되묻기도 했다. 그 한마디로 이 곳의 더위를 깔끔히 정의했던 것. 한 여름엔 무려 46도까지 기온이 수직 상승하니, 이 나라에 씨에스타라는 낮잠 시간이 괜히 생긴 게 아니라는 생각까지 든다. 가장 더울 시간인 오후 3시에서 5시 사이는 낮잠 시간으로, 대부분의 상점과 식당, 관공서들이 이 시간엔 아예 문을 닫는다. 무더위에 지칠 노동자들의 수고를 덜기 위함이기도 하지만 어차피 이맘땐 아무도 거리 밖을 나오지 않으니 사실상 영업을 한다는 게 큰 의미가 없기 때문. 씨에스타 시간에 스페인 거리는 지나가는 먼지 한올조차 없을 만큼 한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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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스페인의 더위에 지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을 때 즈음, 내가 다니는 어학원에서 주말을 이용해 해변여행을 떠날 학생을 모집했다. 조금은 비싼 가격에 망설이기도 했지만 주말에 집에 있어봤자 집주인들이 선풍기도 안틀어주고(스페인은 전기를 프랑스에서 수입하기 때문에 전기료가 상당히 비싸다) 더위에 허덕일 것이 뻔하니 더위를 피해 제대로 된 스페인의 피서를 즐겨보자는 심산으로 가난한 유학생 신분으로는 꽤 사치를 부려 여행비를 지불했다. 내 일주일치 생활비를 써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조금 불편했던것도 사실이었지만 막상 여행 전 날이 되니 여행이 가져다주는 설레임에 절로 콧노래가 나오는건 어쩔 수 없는 내 안의 유아적 성향이었다.

게다가 이곳은 스페인. 그것도 유럽 최고의 휴양지라 할 수 있는 남부지방이다. 이 곳까지 와서 지중해 바다에 발을 담궈보지 않는다는건 왠지 억울하다는 생각까지 든다. 그래, 이왕 떠나기로 했으니 신나는 마음으로 충분히 즐기고 오자는 생각에 소풍 떠나기 전날 잠못드는 어린아이가 된 것처럼 기분 좋은 설레임으로 흥분을 감출 수가 없었다.

 

아침 일찍 어학원 앞에 모여 학원에서 준비한 소형 버스를 타고 신나는 해변 여행길에 올랐다. 스페인에 도착해 도시에서 도시를 이동하는건 이번이 두 번째. 사실상 처음이나 다름 없기도 하다. 어떨결에 말라가에서 세비야로 이동했던 것이 처음이었으니, 그 때는 긴장의 연속이라 사실상 이동길의 풍경을 완전히 담지 못했고 즐기지도 못했다. 그런데 이번엔 얘기가 다르다. 

보호자 자격으로 따라나선 어학원 선생님과 든든한 기사님, 그리고 서로 얼굴은 모르지만 세계 각국에서 모인 어학원 친구들과 함께 움직이니 이것만큼 안전하고 신나는 타국에서의 여행이 또 있을까. 덕분에 스페인의 작은 국도길의 풍경을 연신 눈에 담을 수 있었다.

그 중에서도 도로변에 즐비하게 늘어선 올리브 나무와 해바라기밭이 매우 인상적이었는데 그도 그럴 것이, 스페인 사람들이 먹는 오일은 딱 두가지. 올리브유와 해바라기씨유 뿐이다. 발화점이 낮은 올리브유는 샐러드나 간단한 볶음 요리를 할 때, 튀김처럼 높은 발화점이 요구될 때는 해바라기씨유를 사용한다. 그래서 스페인 남부도시 어디를 가든 올리브 나무와 해바라기밭을 보는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특히 국도를 달리는 동안 보이는 해바라기밭은 그 규모나 풍경 면에서 장관을 연출한다. 작렬하는 태양 아래 하늘거리는 해바라기 꽃이 뜨거운 해를 바라보고 줄지어 있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애틋한 숙연함마저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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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세비야에서 두시간을 달리며 스페인의 국도 풍경을 감상하다 보니 어느새 까디스다.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 사실 해변이 예쁜 휴양 도시로 알려진 곳이지만 유명 플라멩코 여가수인 Perla(빼를라)가 작품 활동을 한 곳으로도 유명하다. 이 곳에 빼를라의 흉상을 세워놨을 정도로 그녀는 까디스 사람들의 자랑이자 자존심이다. 스페인, 특히 남부지방 사람들의 한(恨)과 정서를 대표하는 플라멩코 공연은 그들에겐 하나의 정신이기 때문에 그들의 문화를 제대로 습득하고자 하는 이가 있다면 반드시 플라멩코 공연을 한 차례 이상 관람하길 강권한다.

  

어학원 선생님의 안내를 따라 해변가로 이동하는 길에 허기를 채울 요량으로 친구들과 마트에 들어가니 이 곳은 그야말로 지중해 열대 과일의 성지나 다름이 없다. 눈부신 과일들이 형형색색의 자태를 뽐내며 내게 끊임 없는 유혹을 보내고 있었던 것. 사실 과일이라면 내가 살고 있는 세비야에서도 풍족하게 만날 수 있지만, 지중해 해변도시라는 타이틀때문인지 왠지 까디스의 과일은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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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비야에서 볼 수 없었던 과일도 있었고 신선도나 비쥬얼면에서 여느 지역의 과일보다 월등한 자태를 자랑하니, 도저히 구매를 하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음이다. 그래서 다른 친구들이 빵이며 과자를 살 때 나는 과일을 집어 들었다. 다행히 휴대하며 먹기 편리하게 포장된 과일도 꽤 된다. 날씨도 덥고 수분도 보충할겸 다른 먹거리대신 과일을 집어든 내 선택은 역시 틀리지 않았는데, 그것의 맛을 보니 달콤새콤 상큼한 과일향이 일품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특히 스페인에서 한여름에 먹는 메론맛은 그야말로 신의 선물이나 다름없을 정도로 훌륭하고 감사한 것이다. 일단 가격이 저렴하고(한 통에 한화로 천원꼴) 당도가 상당하며 메론의 은은한 향이 입안을 좀처럼 떠날 생각을 하지 않으니, 이것이야말로 미각에 풍요로움을 선사하는 과일 중의 상과일인 셈. 별다른 아침식사 대신 메론 몇 조각이면 오전 시간을 견딜 수 있을 만큼의 남다른 존재감을 뽐내고, 이것이 곧 신의 선물이 아닐까 하는 착각까지 불러일으킬 정도이니 그런 지중해 지중해 과일은 스페인에 사는 사람들에겐 축복이나 다름없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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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양손에 과일을 들고 찾은 까디스의 해변. 크고 화려하진 않았지만 하얀 백사장과 지중해의 푸른 바다가 절로 탄성을 지르기에 충분하다. 사람들은 해변에 누워 성스러운 스페인의 태양을 온 몸으로 받아내고 있었고 연인이며 친구, 가족 단위의 휴양객들은 여유로운 표정으로 저마다의 휴가를 즐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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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휴양지 치고는 적막하다 싶을 정도로 고요한 그 곳의 분위기가 조금은 낯설기도 했는데, 생각해보니 그들의 휴가는 우리처럼 흥분스러운 행사가 아니기 때문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일년에 한번, 그러니까 어른들에게 주어지는 방학이 고작 사나흘이 전부인 우리와는 달리, 그들은 일년에 두 번, 한달 이상씩 휴가를 즐기기 때문에 이 아름다운 곳에서의 휴양이 딱히 흥분스러울 것 없는 일상의 한 부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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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문인지, 곳곳에 상의를 탈의한 스페인 여성들이 상당수 눈에 띈다. 말로만 듣던 노브라의 여성들이 거리낄 것 없이 자연으로 돌아간 듯 해수욕을 즐기는 모습을 바라보며 진정한 휴양이라는건 어쩌면 이렇게 자연의 일부가 되어 여유를 만끽하는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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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나는 상의를 탈의하지 않았다. 아직 유럽 생활 초년생인 내가 뼛속까지 여유가 쌓인 그들의 문화에 녹아들기엔 그 기간이 너무도 짧았기에. 2년 후 스페인을 떠나 한국으로 돌아갈 때 쯤이 되면 이 곳에서 상의를 탈의할수 있을까... 아름다운 까디스 해변에 앉아 입안 가득 향긋한 메론을 몰아 넣으며 그 날이 오길 기대해 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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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6

  • 2017.04.02 댓글

    바다 풍경이 정말 아름답네요. ㅎㅎ

    • 2017.03.26 댓글

      세비야의 더위가 엄청나군요ㄷㄷ

      • 2016.06.03 댓글

        세비야의 여름 날씨가 그 정도일 줄은... 한가로운 지중해 풍경과 색색의 과일들~ 저도 메론 상당히 좋아하는데요^^

        • 2016.06.03 댓글

          정열의 나라 스페인~ 덥긴하지만 곳곳이 흥미로운 곳이 있어서 여행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곳~잘 보았습니다.~

          • 2016.06.02 댓글

            기회가 되면 여름휴가는 스페인으로 가고 싶어지네요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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