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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 방콕과 김애란의 『바깥은 여름』 - 책 한권과 떠나는 두 손 가벼운 여행 10편

아시아 · 태국 · 방콕

문화/명소

여행전문가 칼럼

2019.10.16 조회수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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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음사 문화예술부 편집 담당 

 

아무 생각 없이 어디론가 훌쩍 떠날 수 있다는 것만큼 사치스러운 일도 없겠으나, 가끔 누구나 그러한 사치를 꿈꾸곤 한다. 긴긴 인생에, 단 한 순간일지언정 그런 사치조차 부릴 수 없다면 도대체 무엇 때문에 이처럼 전전긍긍하며 살아가야 하는 것일까? 종종 분함과 억울함이 엄습해 올 때면, 물론 장차 감내해야 할 여러 뒤치다꺼리, 가령 카드 대금, 부족한 휴가, 지옥처럼 밀려드는 업무 등 세상만사가 두려워짐에도 불구하고, 큰 결단을 하게 되는 것이다. 당장 떠나자. 하지만 내가 긁을 수 있는 카드 한도를 스스로 정할 수 없는 것처럼, 어쨌든 내 마음대로 훌쩍 여행을 가려고 한들 마냥 자유로울 수는 없는 법이다. 최후의 순간을 각오하고 1원 한 푼까지 다 털어 쓸 수는 없기에, 결국 가능한 범위에서 손을 뻗어 볼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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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저런 것들을 다 따져 봤을 때 가장 만족스러운 여행지를 꼽으라 하면, 많은 사람들이 역시 “태국 방콕!”이라고 답한다고 한다. 이 얘기를 들었을 때, 과연 그러하다고 스스로도 실감할 수 있었다. 놀라울 정도로 저렴한 물가에,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비행 거리(이 이상 늘어나기 시작하면 좀이 쑤시기 시작한다.), 세련된 도시 풍경 등 남국의 태양 아래서 넋 놓고 쉬기에 이보다 더 좋은 곳은 없다. 게다가 국제적인 도시라 하루하루 생활하기에 위화감도 없을뿐더러, (진심까지 따져 물을 수는 없겠으나) 대단히 친절해 보이는 사람들이 지치지도 않고 미소를 짓고 있으니 미세먼지 가득한 삭막한 서울에 비하자면, 뭐랄까 천국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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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태국이라는 나라의 정치, 사회적 상황에 대해 생각해 보곤 한다. 과거에 공룡들이 멸종하지 않았다면, 현재의 석유 문명은 가능하지 않았으리라. 같은 이유에서, 태국의 값싼 물가와 천연덕스러운 상냥함 저 아래에 어떤 고통이 자리하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물론 이러한 생각조차, 어떤 의미에서는 ‘나의 사치’ 속에 포함된 우스꽝스러운 시혜(施惠)일지도 모르겠으나, 가끔은 명치가 욱신대며 ‘이토록 모든 것이 저렴하고, 영원한 여름 속에 갇힌 행복한 나라 속의 나’를 돌아보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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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애란의 소설집 『바깥은 여름』의 수록작이자 표제작(?)이라 할 수 있는 「풍경의 쓸모」를 보면, 태국 방콕을 둘러싼 이 기묘한 기쁨과 비애를 쉬이 읽어 낼 수 있다. 나도 항상 비슷한 감각으로 이 멋진 남국의 대도시를 누려 왔다. 전 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추위, 단지 물리적인 추위뿐 아니라 온갖 고통과 스트레스로부터 도피하듯이 이곳, 태국 방콕으로 몰려든다. 「풍경의 쓸모」의 주인공도 마찬가지다. 스스로 열망해서 온 것은 아니지만(가족 여행이었던가?), 어쨌든 냉혹한 한국의 현실과 즐거움으로 넘실대는 태국의 온기가 묘하다 못해, 구역질이 나는 대조를 이루는 것이다. 나 또한 그러했다. 고급 호텔에 머물며, 19세기 말 아시아를 유람 다니던 서구 귀족처럼, 어딘가 걸맞지 않은 배역에 취해 끔찍한 연기를 하고 있는 듯한 나를 발견하곤 한다. 바로 다음 날이면 다시 서울 도심 속 비좁은 자리에 앉아서, 여러 잔심부름에 시달리며 ‘내가 이러려고 그렇게 공부를 했나?’ 같은 싸구려 한탄을 뱉어 낼 것이 분명한데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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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치게 비관적인 이야기였나? 비관적인 게 맞다. 그럼에도 태국 방콕은 여전히 사랑스럽다. 이 모든 감상(感傷)은 그 도시의 몫이 아니다. 그곳은 언제까지나, 언제나 그러했던 것처럼 늘 상냥하다. 얼마 안 있어서, 나는 또다시 방콕을 찾을 것이다. 그때는 단순한 도피처로서가 아닌 새로운 경이를 발견하기 위해서, 그 끝나지 않는 여름날의 열기를 즐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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