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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 스토리

아르헨티나, 내 여행 최악의 버스를 소개합니다 - 그림으로 기록하는 여행, 아트로드 11편

미주 · 아르헨티나 · 부에노스아이레스

문화/명소 음식

여행전문가 칼럼

2019.07.12 조회수533


Buenos Aires, Argentina


볼리비아 산타크루즈 도시에 위치하고 있는 작은 동네 오키나와에서 아르헨티나로 이동하기로 한 날이다.
여기 산타크루즈에서 부에노스아이레스까지는 최단거리로 잡아도 무려 약 2,350km에 달하는 굉장히 먼 거리다. 그리고 내가 예약한 버스는 다른 도시 경유 없이 36시간이면 부에노스아이레스까지는 간다는 직항 버스였다. (물론 그렇지 않았다.) 이미 이전에 아프리카에서 90도 의자 고물버스를 30시간이 넘게 탔던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36시간이라면 견뎌낼 수 있을 것 같아 보였다.

3월1일 밤 8시. 버스가 출발했다. 인생 최악의 이동도 함께 시작되었다.

내 자리는 바로 옆에 스피커가 있었다. 내 속도 모르고 크게 틀어 놓은 스피커 소리에 내내 귀가 아플 지경이었다. 내가 기사 아저씨한테 소리를 줄이거나 끄면 안 되겠냐고 여러 차례 애기를 했지만 변하는 것은 없었다.
그렇게 한참을 이동하던 버스가 갑자기 멈춰 섰고, 주변이 웅성거렸다. 상황을 보니 길 위에서 버스는 고장이 났고, 차를 수리해야 한다고 했다. 그렇게 또 몇시간에 걸쳐 수리를 마치고 다시 출발 한 버스는 그 이후에도 시도 때도 없이 고장을 반복하며 길가에서 서기를 반복했고, 고장이 날 때마다 몇 시간씩 시동을 껐기 때문에 차 안은 그야말로 찜통이었다. 그 폭염같은 날씨에 수십 명이 에어컨 없는 버스 안에 앉아 있는 것은 보통 고통스러운 게 아니었다. 온 몸이 땀 범벅,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땀이 줄줄 흘렀다.


다음날인 2일, 오후 12시경.
우여곡절 끝에 아르헨티나 국경에 거의 다 왔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제 드디어 아르헨티나로 넘어 가는구나 했는데, 국경 도착 직전에 또 버스가 멈췄다. 그런데 이제는 더 이상 수리가 어려울 것 같단다. 하는 수없이 승객 전원은 버스에서 짐을 빼고 택시에 따로 짐만 실어 먼저 국경으로 보내고, 승객 모두는 공격적으로 내려 찌는 땡볕 아래 한참을 걸어 국경으로 이동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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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짐


국경을 넘어가기 위해 스탬프를 찍는 것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국경을 넘으려는 사람들이 워낙 많아서 줄을 서서 한 참을 기다려야 했고, 그늘이 없어 그야말로 수십 명의 사람들이 작은 나무 그늘 아래서 옹기종기 태양을 피하고 있어야 했다. 우여곡절 끝에 스탬프를 받고 아르헨티나로 넘어 왔을 때가 대략 오후 2시가 넘었었다. 우리가 여기까지 타고 왔던 그 빌어먹을 고물 버스로는 이제 더 이상 이동하기는 힘들다고 하니, 전 승객이 다른 버스를 타고 가야했다. ‘그런데 당신들이 말하는 그 다른 버스는 어디에 있죠?’
버스 직원이 버스표를 줄 테니 버스정류장으로 모두 이동해 달라고 한다. 나는 15kg, 5kg배낭을 앞 뒤로 메고 국경에서 가장 가까운 터미널까지 걸어갔다. 그 거리도 꽤나 멀었다. 터미널에 도착하니 표를 나눠준다. 표를 보니, 지금이 2일 오후 3시인데, 버스가 5시간 뒤인 8시에 출발이란다. 설상가상으로 8시에 출발하는 버스가 바로 부에노스아이레스로 가는 것이 아니라, 투쿠만이라는 중간 도시까지만 가는 것이었고, 투쿠만에서 또 다른 버스로 갈아타야 했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갈아타는 것은 둘째 치고, 밤 8시에 출발하는 버스가 새벽에 투쿠만에 도착하면, 투쿠만에서 오후 1시까지 기다려야 하고, 오후 1시에 부에노스아이레스로 가는 버스는 모레인 4일 아침 9시에 도착한다는 것이다. 너무 어이가 없었다. 그 이동 스케줄을 듣는 것만으로도 온 몸에 힘이 풀렸다. 나는 볼리비아에서 36시간 걸리는 버스표를 샀단 말이다! 이것은 꿈에서도 못 봤던 악몽이다. 이 과정에서 지금까지 힘든 일들을 잘 참아왔던 내가, 억울하고 화가 나서 눈물을 쏟기도 했다.

하지만 방법은 없었다. 오랜 기다림 끝에 버스를 탔고, 시간은 갔다.


3일 날 이른 아침에 투쿠만 버스터미널에 도착했다. 모든 승객이 나와 같은 처지이기에 다 하나같이 지쳐있었다. 나를 포함한 몇몇 사람들은 터미널 화장실에 가서 간단하게 세수를 하고 양치질을 했다. 아무래도 힘든 상황을 함께 겪은 사람들이다 보니, 서로도 모르게 정이 든 것인지, 동료애인지, 마음이 가까워져 있었다. 영어를 잘하셔서 나에게 간간히 통역을 해주셨던 비비아나 아줌마가 나에게 다가왔다. 다음 버스는 오후 1시에 출발하니 그때까지 버스터미널에서 이렇게 우울하게 앉아만 있지 말고 투쿠만 시내에 가서 구경이라도 하자는 제안을 하기 위한 것이었다. 우리는 함께 시내로 나갔다. 이른 시간이라 아직은 썰렁한 시내의 모습이었지만, 칙칙한 터미널 의자에 앉아서 시간을 썩히는 것보다는 백배 나았다.
아침도 사먹고, 군것질도 하면서 나름 기분전환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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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음식


다시 돌아온 터미널. 버스가 도착했다는 소리에 오랜 시간 기다렸던 승객들이 일제히 버스로 몰렸고, 나는 주머니에 넣어 놨던 버스표를 찾았다. 근데 분명 주머니에 있어야 할 버스표가 무슨 일인지 잡히질 않는다. 표가 사라졌다. 생각을 더듬어보니, 밤새 여기까지 이동하는 과정에서 중간에 두 번이나 버스에서 내려서 가방 검사를 했었는데, 그때 빠진 듯 했다.
버스표가 없으면 버스에 탈 수 없는데, 큰일이다.
“저..저기요. 저 버스표가 있었는데 없어졌어요!”
얼굴이 하얘져서 당황한 동양소녀에게 한 모녀가 다가왔다.
“버스표가 없어졌어요? 버스 사무실로 같이 가 봐요. 재발급이 되는지 물어볼게요.”
매표소에서 만난 실바나 모녀는 버스 사무실에 가서 직원에서 내 사정을 설명했다. 직원은 약간의 추가요금을 내면 다시 재발급이 가능하다는 말을 했다. 그런데 문제는 당시 나는 아르헨티나 페소가 없었다. 페소를 내려면 또 환전소를 찾아가서 환전을 하거나, 아니면 카드로 돈을 뽑아야 했다. 그런데 실바나 어머니는 나를 처음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걱정말라 하시며 돈을 대신 내주셨다.
“그라시아스! (감사합니다.)”
감사하다는 말로는 부족했으나 당시 내가 전할 수 있는 말은 그것이 전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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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실한 버스표 추가 요금을 대신 내어주신 고마운 실바나 모녀


드디어 부에노스아이레스로 향하는 마지막 버스를 탔다.
이번 여정은 장장 60시간이 넘는 시간을 길 위에 쏟아 부었고, 버스에서 3번의 밤을 보냈다. 부에노스아이레스로 가는 버스는 정말 추웠다.

3월 4일 아침 9시.
부에노스아이레스 버스터미널에 도착했다.
버스에서 짐을 찾아 터미널 의자에 앉았는데, 여기까지 오기까지의 3박4일간의 힘들었던 여정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정신을 다시 부여잡고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카우치 호스트 친구 ‘하비’네 집으로 향했다.

하비네 집은 한 층의 집에서 5명의 친구들이 룸메이트로 함께 살고 있었다. 내가 그의 집에 도착했을 때에는 하비는 이미 회사에 출근한 상태였고, 다른 룸메이트가 대신 나를 맞이해 주었다. 우선 거실에 짐을 두고, 며칠간 씻지 못해 근질거리는 몸을 씻었다.

내가 도착했다는 소식을 전화로 들은 하비는 점심시간에 회사에서 잠깐 집으로 와 인사를 하고 함께 점심을 먹었다. 4일간 겪었던 최악의 버스이야기를 해주니 하비를 고개를 저으며 너무 끔찍하다고 말한다. 그렇다. 너무 짜증났고 힘들었다. 하비의 말대로 끔찍했다. 하지만 힘들었던 그 안에서 위로 받고 감사한 사람들을 만났다. 모두가 다 나와 같은 처지에 짜증나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위로해주고 챙겨주던 사람들 덕분에 잘 버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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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위로해 주셨던 비비아나 아주머니 부부와 함께


내 여행. 아니, 내 인생 최악의 버스였다. 하지만 그 최악의 버스가 액땜을 해 준 것 같은 기분이 든다. 힘들게 도착했던 부에노스아이레스이니, 그만큼 나에게 특별하고 좋은 추억을 많이 만들어 줄 것 같다. 아니 이미 만들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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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 그리고 관계 속에 나


‘탱고를 추자!’
Buenos Aires, Argenti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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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ngo, Buenos Aires, Argentina


아르헨티나는 탱고의 고장이다.
1880년 무렵 부에노스아이레스의 하층민 지역에서 생겨난 탱고는 ‘멈추지 않는 춤’, ‘네 다리 사이의 예술’이라고 불린다. 그렇기에 강렬한 탱고의 매력을 느끼기 위한 가장 최적의 곳은 바로 부에노스아이레스 일 것 이다.

영화에서 처음 접하게 된 탱고. 그 첫인상은 정말 강렬했다. 그래서 그때 다짐했지. 내가 비록 춤은 잘 못 추지만 부에노스아이레스에 가면 꼭 탱고를 배워보겠다고. 그리고 어느새 나는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와 있었고 그 도전을 안 해볼 이유가 없었다.


친구 하비에게 탱고를 배워보고 싶다고 말했다. 하비는 이리저리 인터넷으로 검색해 보고 저렴한 탱고 일일 체험 클래스를 추천해 주었다.
그 날 오후 찾아간 탱고 학원. 학생은 총 6명이었는데, 나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은 이전에 이미 탱고를 한번 이상은 배워본 사람들이었다. 탱고 선생님은 그들에게는 새로운 기술들을 알려주었고, ‘탱고’에 ‘ㅌ’도 모르는 나에게는 탱고의 최고 기본부터 알려주셨다. 보통 탱고를 보면 여성댄서의 몸짓이 더 화려하고 눈에 들어오기 때문에, 나는 여자가 춤을 아주 잘 추는 사람이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사실은 그것은 남성댄서의 역량이었다. 그래서 리드를 잘하는 남자 파트너라면 못 추는 사람이라도 어느정도는 추게 된다는 것이었다. 남자의 역할이 더 크다는 탱고이지만, 여자도 남자가 보내는 신호를 잘 받아 움직이는 것도 중요했다. 남자가 당기고 움직이는 몸짓에 몸을 맡기며 흘러가듯이 춤을 춰야 했다. 스텝을 외우는 것보다 그것이 더 중요하는 선생님의 말씀을 깊이 새겼다. 비록 하루 1시간 반이라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몰랐던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는 것만으로 만족스러웠다.


그리고 그 날 밤, 하비가 퇴근을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하비, 나 오늘 탱고 배우고 왔어.”
“아 그래? 그럼 이제 탱고 출 줄 아는 거야?”
“무슨 말도 안 되지. 더 연습해야지. 어떻게 연습하면 될까?”
내 질문에 하비는 방에 들어가서 노트북을 들고 나왔다.
“집에서 연습하면 되지! 내가 도와줄게.”
“정말? 좋아.”
하비는 유튜브를 열어 탱고 강좌 동영상을 검색했다.
그리고 가장 초급 강좌를 열었다. 하비와 나는 우선 그 동영상을 열심히 눈으로 익혔다.

“이리 와봐. 보면서 따라 해보자.”
거실 식탁에 노트북을 올려놓고, 우리는 포즈를 따라 잡았다.
“원 투 쓰리 포. 원 투 쓰리 포”
나는 자꾸 스텝순서를 헷갈려서 하비의 발을 밟았다. 하지만 하비도 춤을 춰 본 적이 없단다., 우리 둘다 실력이 엉터리였다. 기대 이하의 서로의 춤 실력을 보고 웃음을 멈출 수가 없었다.
“웃지 마 하비. 나 지금 진지해. 오늘 이 스텝은 마스터 하겠어. 침착해.”
여러 번의 연습 끝에 이제 서로의 발 등을 밟는 것은 피할 수 있었다. 그 때 마침 일을 마치고 퇴근한 룸메이트 친구가 들어왔다. 그리고 나는 그를 거실로 불러냈다.
“우리가 지금 탱고를 연습하고 있거든. 한 번 봐줘.”
무슨 자신감이 있어서 보여주려는 것은 아니었다. 그냥 우리가 이렇게 유튜브를 틀어놓고 탱고를 연습하고 있는 이 장면이 너무 재미있어서 다른 친구와도 공유하고 싶었던 것이었다.
“그래, 한 번 춰봐. 평가 해줄게.”
룸메이트 친구는 소파에 앉아서 큐 사인을 보냈다.
하비와 나는 시작부분으로 맞춰 놓았던 유튜브 동영상을 재생 시켰다. 그리고 가재미 눈을 뜨고 동영상을 힐끔힐끔 보면서 스텝을 밟았다.
“원 투 쓰리 포. 원 투 쓰리 포”
다행히도 춤을 마치고 난 뒤에도 우리의 발 등은 멀쩡했다. 관객 앞에서 쪽팔림은 면할 수 있었다.
우리의 어설픈 춤을 보고 룸메이트 친구가 박수를 쳐준다.
“멋진데! 초등학생들 같아. 하하.”
초등학생 같다는 말은 못들은 걸로 했다. 어쨌든 멋지다는 말을 들었으니, 그걸로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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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비와 집에서 탱고연습하기


다음 날.
“하비, 우리가 어제 탱고를 배웠으니 이제 써먹으러 가야지!”
“좋아, 이 근처에 정말 좋은 곳이 있어. 가자.”
하비네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는 탱고를 배울 수도 있고, 탱고 쇼도 볼 수 있는 밀롱가가 있었다. 밀롱가는 탱고를 즐기는 장소를 뜻한다. 하비 친구들과 함께 그 곳을 찾아갔다. 마침 오늘 탱고 수업이 있는 날이라고 해서 우리는 모두 그 수업을 듣기로 하고 시간에 맞춰 도착했다. 인기가 많고 유명한 곳이라서 그런지 수업을 들으러 온 사람들이 많았다. 수업을 받는데 어제 유튜브를 틀어 놓고 연습했던 것들이 조금은 도움이 되는 것 같았다. 저기 멀리서 다른 파트너와 춤을 추며 땀을 흘리고 있는 모습을 보니, 하비는 꽤나 몸이 마음대로 움직이는 않는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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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간이 조금 넘는 탱고 수업을 마치고 오늘 열린다는 탱고 공연을 기다렸다. 공연은 매일 열리는 것이 아니라 주말이나 금요일 밤에 가끔 열리는 것이기 때문에 기회를 잡았을 때 꼭 봐야했다. 자리를 잡고 공연시작 전 일반 사람들이 서로의 파트너와 함께 탱고를 즐기는 모습을 구경했다. 사실 우리가 배운 것을 실전에서 써먹으려면 바로 이럴 때에 사람들과 함께 춰야 하는 것인데, 왜 그렇게 용기가 안 나던지, 하나같이 화려하고 안정되게 춤을 추는 사람들 사이에서 물을 흐리고 싶지 않았다. 이곳 밀롱가의 전체 구조는 가운데 넓게 무대가 있고, 그 주변을 둥글게 식사와 술을 할 수 있는 테이블과 의자가 자리하고 있다. 그래서 식사를 하면서 춤을 추기도 하고 춤을 추다가 들어와서 식사와 술을 할 수 있는 곳이었다. 그 어느 사람도 춤추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았고 모두가 너무나 즐겁게 탱고를 즐겼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새벽 2시가 다 되도록 이어지는 밀롱가에서 멋있는 춤사위를 보여주시던 머리가 하얗게 흰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모습이었다. 그리고 백발의 할아버지가 내미는 춤 제안을 거절하는 여성은 아무도 없었다. 테이블에 앉아 있는 젊은 여성에게 젠틀하게 손을 내밀면 모든 여자들이 밝게 웃으며 함께 탱고를 즐겼다. 과연 내가 보는 이 모든 것들이 한국에서도 가능할까. 백발의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새벽 2시가 되도록 탱고를 즐기실까, 구부정한 할아버지가 내미는 춤 제안을 웃으며 받아줄 젊은 여성이 얼마나 될까.
내가 굳이 나가서 춤을 추지 않아도 그 모습을 보는 것 자체가 유쾌하고 새로운 경험이었다.


새벽 2시가 되자 공연이 시작되었다. 전문 댄서가 나와 라이브음악과 함께 정열적인 탱고의 향연을 보여주었다. 넓은 공연장을 뜨겁게 채우는 그 강렬함은 그 주변을 둘러싼 수백 명의 관객들 모두를 짜릿하게 전율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카리스마 넘치는 절제된 표현과 어쩔 때는 생각하지도 못했던 화려한 몸짓들. 부드러움과 강함, 그리고 직선과 곡선이 완벽 하리만큼 적절히 조화 된 모습이 감동적이었다.
그 시간 동안 나는 무엇인가에 홀린 듯, 그 공간을 가득 채운 마법 같은 분위기에 푹 젖어있었다.


나는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탱고라는 춤을 제대로 배우고 싶었지만, 탱고의 고장에서 탱고를 보고 감동받고 잠시라도 뜨거워졌었던 것만으로도 목표 그 이상의 것을 이룬 기분이다.
내가 어떠한 춤을 보면서 이렇게 뜨거워졌던 적이 있었나. 바라만 봐도 짜릿했던 적이 있었나.

탱고의 본 고장에서 탱고의 매력을 제대로 느낀 것 같다.

탱고는 뜨겁다. 탱고를 추자. 뜨거움을 추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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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ngo! Argenti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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