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트래블 매거진 > 테마 스토리

테마 스토리

너새니얼 호손의 「야망이 큰 손님」과 미국 휴스턴- 책 한권과 떠나는 두 손 가벼운 여행 5편

미주 · 미국 · 휴스턴

문화/명소

여행전문가 칼럼

2019.05.23 조회수524


0 민음사 문화예술부 편집 담당


인간은 저마다 특별한 목적을 품고 여행에 나선다. 낯선 세계의 풍물을 구경하기 위해, 누군가와 좋은 추억을 만들기 위해, 어쩌면 업무나 쇼핑을 위해 비행기에 오를지도 모 른다. 공항에서 자신의 비행기를 기다리는 사람의 수만큼이나 이 세상엔 다양한 여행의 의미 와 목적이 있겠지만, 어쨌든 ‘낯선 세계’로 떠난다는, 즉 ‘일상에서 벗어난다’는 점만큼은 공유 한다. 이 즐거운 고독을 함께 나눌 최고의 동반자는 누구일까? 익숙하지 않은 언어와 생경한 문화 속에서 철저히 이방인이 됐을 때 여행자에게 기탄없이 손을 뻗쳐 줄 상대는 누구인가? 이국의 기묘한 소란스러움과 미지의 세계가 전해 주는 초조함 속에서, 그것 자체를 하나의 ‘여행적 경험’으로 체험하게 해 줄 최고의 동반자는 어쩌면 책일지도 모른다. 우리를 끊임없이 일상으로 잡아끄는 스마트폰 대신, 낯선 세계와 어울려 여행의 진가를 누리게 해 줄 가벼운 책들을 소개해 보고자 한다. 먼 하늘 너머로 사라진 영원한 청춘의 여행자 생텍쥐페리의 말대 로 “행복한 여행은 두 손 가벼운 여행”일 테니까.


1


스스로를 대단한 여행가라 칭하기엔 여러모로 부족한 점이 많기에, 그저 씀씀이가 어지러운 월급 생활자라 해 두겠다. 미국 서부를 다녀온 이후로, 미국은 정말 좋구나, 하며 감탄만 하다가 십수 년이 흘렀다. 영화 「멀홀랜드 드라이브」나 「라라랜드」 말고도(둘 다 로스앤젤레스를 배경으로 하는 작품이다.), 언제나 우디 앨런의 뉴욕 풍경을 꿈꾸며 살아왔었다. 하지만 수중에 들어오는 돈이라면 무조건 다 털어 써 버려야 직성이 풀리는 팔자 탓에, 장거리 여행을 기약하며 착실히 인고하는 삶 따윈 잊은 지 오래였다. 또 세상만사의 아이러니 덕분인지, 어느 정도 돈이 모이면 막상 시간을 넉넉히 융통할 수 없었다. 그래서 누구나 그러하듯 쉬이 단념해 버리고, 의식주와 상당 부분 소원해 보이는 여행 자체를 깔끔히 잊고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 운이 참 좋았는지, 뉴욕 출장의 기회를 얻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뉴욕만 다녀오는 것은 아니었고, 도중에 평생 관심도 없던 휴스턴까지 경유하는 코스였다. 어떤 의미에서는 장차 다시없을 굉장히 특별한 경험이었기 때문에, 뉴욕보다 휴스턴의 인상이 더 강렬하게 남아 있다.
휴스턴으로 향하는 비행기는 문자 그대로 비어 있었다. 멀리서 온 환승객, 업무로 발길을 서두르는 사람 몇 명을 제외하면, 순수하게 관광을 위해 휴스턴으로 향하는 이들은 아예 없는 것만 같았다. 그런 예감은 결코 망상이 아니었는지, 여행 목적을 묻는 입국 심사관조차 “일도 좀 보고, 관광도 하러 왔습니다.”라는 내 말에 적잖이 놀라는 눈치였다. “휴스턴에서 관광을요? 볼 게 뭐가 있다고!” 늘 사람을 긴장하게 하는 미국 세관이기에, 나는 괜히 얼어붙어 쭈뼛거리며 “나사(NASA)도 있고…….” 하면서 결국 말끝을 흐리고 말았다. 입국장을 서둘러 나오며 돌아본 휴스턴 공항은 유달리 한산해 보였다. 굳이 스타벅스에서 음료를 사 마시며, 낯선 세계의 풍경을 좀 더 들여다보기로 했다.


2


사실상 업무는 하루 사이에 다 끝났다. 정녕 중요한 일들은 전부 뉴욕 일정 중에 들어 있었기 때문에, 이 나른하고 찬란하고 드넓고 텅 빈 도시에서, 아무런 죄책감 없이 망중한을 즐겨 보기로 마음먹었다. 온종일 차를 대절하여, 대중교통이라고는 좀처럼 찾아볼 수 없는 휴스턴 곳곳을 돌아다녔다. 운전사는 일찍이 동유럽에서 이주해 온 백인 노인 남성이었는데, 동양인인 나를 상대로 상당히 들어주기 괴로운 인종 차별적 발언을 서슴지 않아서, 그야말로 내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역시 텍사스인가?”라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고, 뭔가 뉴욕이나 샌프란시스코와는 전혀 다른 세계인 것만 같았다. 또 허허벌판에 드문드문 들어선 집들을 가리키며 “이게 텍사스의 삶이죠. 각자 성(城)이 있고, 그걸 지키려면 총이 필요하다고요!”라고, 총기 소지에 관한 본인의 의견까지 빠짐없이 고백해 주셨다.


3


그러고는 뭐든지 큰 텍사스의 음식들을 내 식도로 들이부었다. 미술관, 로스코 채플, 렌조 피아노의 건축물, 이름 모를 마천루도 보았다. 그중 가장 인상 깊었던 곳은, 아무래도 나사 본부였다. 우리가 영화, 드라마에서 종종 듣던 “휴스턴은 잘 있나?”의 장소, 바로 이곳 나사 본부를 가리킨다. 휴스턴의 유일한 관광지라 해도 무색하지 않으리라. 내가 휴스턴 시내를 돌아다니며 만난 모든 사람들보다 더 많은 이들을 나사 본부에서 마주쳤다. 매표소에서 입장권을 구입한 뒤, 나도 모르는 사이에 한 무리의 학생들과 어울려 전시관 곳곳을 배회하고 있었다. 정말 놀랍도록 오래되고 낡은 실내 시설에 입이 딱 벌어졌다. 매점도 이제 장사를 안 한다며 남은 감자튀김 정도만 팔 수 있다고 했다. 아무튼 그랬다. 뭔가 1980년대 SF 영화의 세트장을 거니는 기분마저 들었다. 먼 우주 시대의 메아리 같다고나 할까.


45


미국에 가니까 미국 소설을 챙기기로 했다. 아주 단순한 인과 관계다. 『주홍 글자』 등으로 유명한, 누구나 다 알지만 아무도 읽지 않는 고전 작가, 너새니얼 호손의 단편집을 골라 들었다. 참으로 놀라운 것은, 고전을 만날 때마다 절절히 실감하게 되는 바이지만, 일단 첫 장을 넘기고 나면 전혀 지루하지 않다는 사실이다. 너새니얼 호손의 작품들도 그랬다. 심지어 재미있을 정도다.
나는 그의 작품 중에서도 「미를 추구하는 예술가」와 「야망이 큰 손님」을 유독 좋아한다. 둘 다 거대한 이상에 ‘매몰’되고 마는, 혹은 ‘매몰’될 수밖에 없는 한 인간의 운명을 들려준다. 텍사스 휴스턴에서 내가 받은 인상을 하나 꼽아 보자면, 바로 ‘야망’이었다. 분명 나사 때문이었으리라.
우주를 향한 인간의 열망, 냉전 시대의 야심, 그리고 모든 질문에 침묵으로 일관하는 암흑의 공간. 이 막대한 야망의 소용돌이가 쇠락한 나사 전시관과 한데 맞물리며, 내 가슴속에 너새니얼 호손의 작품을 불러일으킨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닐 터다. 꿈의 위대성은 그것의 성취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소망하는 마음 자체에 있으니까 말이다. 우주를 정복할 수 없더라도, 드넓은 천공을 바라보는 눈동자만큼은 영원히 아름다우리라.

나사 전시관은 과거 건물을 재활용한 것이다. 따라서 낡아 보이는 건 당연하다. 현재 진행형의 나사는, 호손의 「야망이 큰 손님」처럼 산사태에 파묻힌 것 같지는 않다.


67



당신 여행스타일에 맞는 천만 가지 여행상상 KALMASTER travel.koreanair.com

0byte / 800byte

※ 게시판 성격과 맞지 않는 글은 통보 없이 삭제될 수 있습니다.

댓글 3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