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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한권과 떠나는 두 손 가벼운 여행 4편 - 헤르만 헤세의 『싯다르타』와 태국 치앙마이

아시아 · 태국 · 치앙마이

문화/명소

여행전문가 칼럼

2019.04.17 조회수2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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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음사 문화예술부 편집 담당 


가성비를 중시하는 우리나라 사람들한테 동남아만큼 한 해의 묵은 회포를 풀기에 좋은 장소도 없다. 그게 나쁜 일은 아니다. 하나의 사소한 물건을 살 적에도 수백 개의 쇼핑 사이트를 오름차순으로 정렬해, 배송비와 쿠폰 그리고 적립금까지 하나하나 따져 보지 않는가. 돈을 문제 삼지 않는 만용을 대단한 일인 양 칭송할 필요는 없다. 또 하나 아쉬운 점은 나 스스로 ‘동남아’라고, 그 크고 위대하며 각기 개성적인 어떤 지역을 너무도 안일하게 언급해 버렸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우리나라를 그저 ‘동북아’라 여기지 않듯이, ‘동남아’에 속하는 모든 나라는 저마다 다른 얼굴과 정신을 지니고 있다. 인도와 중국을 가로지르고, 고산 지대와 대양을 전부 아우르며, 심지어 남반구의 오스트레일리아 대륙에 이르고 있으니, 그 다양성은 이미 짐작하고도 남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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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휴가로 동남아에 간다고 했을 때, 대개는 필리핀이나 베트남, 태국을 떠올릴 것이다. 비행기를 타면 전부 5시간 내외로 닿을 수 있는 거리다. 저 유명한 발리만 해도 최소 7시간에 육박하니 약간 부담스럽기는 하다. 여하튼 여러모로 태국이 인기인 듯하다. 독실한 불교 국가이자 전 세계 환락의 중심지라 불리는 이 물욕과 해탈의 나라는, 일상에 지친 모든 관광객들을 매 순간 유혹한다. 최근 물가가 올랐다고는 하지만, 태국에서 가장 값비싸기로 소문난 방콕의 물가조차 여유를 좇아 허겁지겁 달려온 여행자에겐 한없이 상냥하기만 하다. 태국은 방문객들로 하여금 지갑을 열게 하는 데에 독특한 기술을 지니고 있고, 우리들 또한 이 미소의 나라에서 기꺼이 돈을 지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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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은 방콕에 들러 남쪽으로 향한다. 왜냐하면 그곳엔 남국의 바다가 있기 때문이다. 잿빛 도심에서 매연, 소음 따위와 호형호제하는 우리들에게 그 옥빛 바다는 차라리 환상, 아니 깨어나는 순간 송두리째 사라져 버리는 꿈에 가깝다. 방콕에서는 세계 최고 수준의 쇼핑몰과 호텔, 세련되고 고급스럽기 짝이 없는 온갖 식도락을 즐기고, 남쪽 해변에서는 예의 코코넛과 망고, 차갑게 식은 맥주를 들이켜며 한 발자국씩 다가오는 악마 같은 귀국일에 가슴을 졸이곤 한다. 그 모든 찬란한 풍경이 일종의 모자이크가 되어 SNS를 가득 채운다. 우리가 동남아라고 부르는 태국의 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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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북으로 향해도 좋다. 태국을 이루는 많은 부분이 그곳에서 왔다. 티베트와 중국의 문화가 설원을 활강하여, 열기 가득한 남쪽으로 온 것이다. 물론 바다를 통해서도 다양한 풍속이 전해져 왔을 터다. 가령 우리가 익히 아는 ‘팟타이’라는 음식도, 오늘날엔 태국을 대표하는 이 음식조차도 사실은 웍을 쓰는 중국의 영향 속에 탄생했다. 음식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태국에 가면 곧잘 먹는 ‘쏨땀’(일종의 샐러드랄까?) 또한 저 북쪽에서 온 것이다. 코끼리의 옆모습을 한 태국 땅을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북부 낮은 고원 지대에 ‘꽃의 도시’ 치앙마이가 있다. 태국 제2의 도시이자 북부의 수도라 불리지만, 방콕에 견주면 그저 작디작은 마을처럼 보인다. 기이할 정도로 마천루 숲을 이룬 방콕과 달리, 치앙마이에는 별다른 도심의 흔적이 없다. 그래서일까? 탁 트인 시야 너머로 웅장하게 펼쳐진 산세를 보고 있노라면, 이곳이 과연 엽서 그림 같은 남국일까, 하는 의문마저 떠오른다. 공기는 또 어떠한가. 습도와 염분은 숲속 미세한 울림처럼 슬쩍 잦아들고, 제법 선선한 기운이 두 뺨을 어루만진다. 분명 하늘에 더 가까워졌을 터인데도, 창공의 푸름은 이루 형언할 수가 없다. 사진관 벽면에 내걸린 인위적인 하늘 풍경처럼, 치앙마이의 자태는 비현실적인 정도로 찬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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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명 ‘올드 시티’라 불리는 옛 도성과 그곳을 중심으로 양옆에 위치한 새로운 시가지가 치앙마이를 이루고 있다. 한때 란나 왕국의 수도로서 크게 번성하였던 이곳의 영화는 올드 시티의 고색창연한 유적을 통해 쉬이 확인해 볼 수 있다. 수천 개의 크고 작은 사원은 불교 왕국의 위엄과 염원을 동시에 보여 주며, 마치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들려주려는 듯 우리를 유혹한다. 한편 주말마다 이 올드 시티를 무대로 장대한 시장이 펼쳐지는데, 그 밤낮 없이 시끌벅적대는 모습에 절로 흥이 날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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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드 시티를 벗어나 서쪽으로, 치앙마이 대학교와 세련된 숍과 카페가 밀집한 님만해민을 지나 숲속으로, 산속으로 긴긴 둘레길을 차로 달려 오르다 보면 산 정상에 느닷없이 자리한 거대한 사원이 눈에 들어온다. 물론 당장 차에서 내린다고 사원의 전모가 보이는 것은 아니다. 황금 사원에 이르기까지 제법 큰 규모의 시장이 서 있고, 수많은 참배객을 실어 나르는 교통편으로 주변은 늘 북새통이다. 숲의 찬 기운에 더운 공기가 급히 식은 탓일까, 침침하게 깔린 희뿌연 안개가 시야를 장악한다. 사실 이곳은 두 번째 방문이기에, 여러 상이한 기억이 뒤섞여 있다. 처음 왔을 적엔 삼백여 개의 계단을 하나하나 밟고 올라갔다. 그야말로 진중하고도 겸허한 참배였다. 그러나 두 번째 왔을 때엔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정상에 올랐다. 그 뒤에 이어진 경이로운 장관은 동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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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미안』으로 유명한 헤르만 헤세의 작품 『싯다르타』를 보면(부처와 이름이 같지만, 이 작품 속의 싯다르타는 다른 인물이다.), 우리가 궁극적으로 이르고자 하는 ‘깨달음’에 대해 여러 가지 상념을 품게 된다. 주인공 싯다르타는 구도자로서 해탈에 이르고자 모든 부귀영화를 뿌리치고 ‘완전한 존재’, 즉 부처를 찾아가 가르침을 구한다. 그때 진정한 깨달음은 부처의 말씀, 즉 이론적인 무언가에 있는 게 아니라 부처의 삶 자체에 있음을 알아차리고, 돌연 속세로 돌아온다. 하지만 부처의 말씀을 받드는 것으로 해탈을 모색하기로 한 친구 고빈다는 불가에 뜻을 두기로 한다. 환속한 싯다르타는 결혼도 하고, 큰돈을 벌어 엄청난 성공을 구가하지만 결국 모든 것이 부질없음을 스스로 깨닫고, 우주의 이치를 일러 준 강물 곁에 머물며 여생을 보낸다. 세월이 흘러 싯다르타는 우연한 기회로 친구 고빈다를 다시 만나게 되고, 자신이 얻을 바를 전해 주며 진정한 해탈이 무엇인지를 설파하게 되는데……. 내용은 대략 이러하다. 전형적인 헤세의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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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컨대 진정 중요한 것은 계단이냐, 엘리베이터냐, 하는 문제가 아니다. 서역에서부터 부처의 진신 사리를 모시고 산을 넘던 상서로운 흰코끼리가 바로 이곳에서 숨을 거뒀다고 한다. 높이를 보니 과연 그럴 만하다. 오늘날 그곳엔 화려한 황금탑이 위풍당당하게 서 있다. 정녕 부처님이 도왔는지, 정상에 도착한 그 순간 하늘이 지독할 만큼 맑게 갰다. 새파란 천궁을 배경으로 불탑이 일광욕을 한다. 눈이 부시단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반짝였다. 한 번 왔든 두 번 왔든, 무엇을 타고 이곳까지 올랐든, 가장 중요한 것은 매번 새롭게 감동받을 수 있는 마음가짐이 아닐까 한다. 아마 다시 가더라도, 설령 비가 쏟아지더라도 그 놀라운 풍광에 몇 번이고 또다시 감동받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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