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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츠 카프카의 「만리장성을 축조할 때」와 중국 베이징 - 책 한권과 떠나는 두 손 가벼운 여행 3편

아시아 · 중국 · 베이징

문화/명소

여행전문가 칼럼

2019.03.08 조회수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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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음사 문화예술부 편집 담당


중국에 가고 싶다가도 비자를 따로 내야 한다는 사실에 금세 위축되고 만다. 온갖 번거로움에 취약한 사람이기에, 그 단순한 절차마저도 쉽지 않다. 그래도 베이징에는 가 봐야 한다는 강한 결심이 섰다. 목표는 다른 여행자들과 마찬가지로 자금성이었다. 영화 「마지막 황제」를 보고 자란 사람으로서, 그 웅대하고 비극적인 장관을 내 눈으로 직접 목격하고 싶었다. 일단 지도를 펼치고(전적으로 수사적인 표현이다. 사실은 구글 지도로 살폈다.) 베이징의 규모를 들여다보았다. 오래된 대국의 수도답게 베이징은 정방형 형태로 메트로폴리스를 이루고 있었다. 거기에 딸려 나오는 온갖 기사를 보니, 베이징에서 태어난다는 것 자체가 중국인에겐 어마어마한 혜택이라는 둥 올림픽 이후 하루가 다르게 치솟는 물가가 무섭다는 둥……. 텍사스에선 모든 게 크다는 말처럼, 역시 중국도 그 덩치만큼이나 모든 것이 거대한 듯했다. 나이 든 도시는 노인의 세포처럼 더디게 생장하는 데에 반해, 새로 태동하는 도시는 무서울 정도로 맹렬하게 꿈틀댄다. 물론 역사적으로 따지자면 베이징만큼 유서 깊은 대도시도 없을 것이다. 수많은 제국이 여기에 터를 잡고 천하를 호령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개혁 개방 이후, 베이징은 새로운 전기를 맞았다. 자본주의 문명이 이 고도(古都)로 쏟아져 들어오면서 도시의 형태는 아무리 신묘한 점성가조차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변모하고 있다. 청나라 시대의 모습을 간직한 오래된 동네와 전위적인 건축물이 어깨를 맞대고 있는가 하면, 마오쩌둥의 초상과 루이 비통의 광고가 마주 보고 있다. 톈안먼 사건 당시에 이 세상에 존재하지도 않았으면서 나는 그 탁 트린 광장을 내다보며 묘한 상념에 사로잡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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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금성


자금성을 영어로 적으면 ‘Forbidden City’가 되는데, 자금성(紫禁城)의 ‘禁城’을 오역한 까닭이란다. 그런데 완전한 오역만은 아닌 게 이 현존하는 지상 최대의 궁궐을 보고 있노라면, 그 위용에 압도당하고 만다. 과거 유럽의 사신들이 왔을 때, 그중 어느 한 사람이 만용을 부려 “궁궐이 커 봤자 얼마나 크겠소? 그냥 걸어가리다!”라고 선언했단다. 분명 청의 위세를 깔보기 위해 그러했겠지만, 결국 걷다가 지쳐 말을 불렀다고 전해진다. 궁성으로 들어가는 과정 자체가 하나의 금기를 뚫고 들어가듯 삼엄하기 이를 데 없다. 프란츠 카프카가 지리멸렬한 법 제도를 재미난 우화로 그려 낸 「법 앞에서」를 방불하게 할 정도로, 자금성은 대문과 대문으로 이어지는 기나긴 벽에 감싸여 있다. 높기는 얼마나 높은지.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이곳의 정전이라 할 수 있는 태화전에 이르렀다. 영화 「마지막 황제」에서 선통제가 즉위식 때 철없이 뛰어나오던 장면이 퍼뜩 떠올랐다. 다만 다른 게 있다면 수천의 문부백관 대신 간편한 옷차림의 정신없는 관광객들이 광장을 가득 채우고 있다는 정도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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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단


그리고 이어지는 코스는 천편일률적이다. 이화원을 구경하고, 천단을 보고. 엽서에서나 마주할 법한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더불어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어떤 연유로 이러한 수석을 장식하고, 어디서 뱃놀이를 즐겼으며, 천자에겐 중요한 장소며……. 애석하게도 그 모든 기억이 휘발되어 버렸다. 오히려 천단 주변 공원에서 노인들이 멀찍이 듬성듬성 물러서서 각자 거대한 붓을 쥐고 물로 땅바닥에 서예를 하던 모습이 기억난다. 이상하게도 장관이었다. 서예를 지닌 문자가 몇 없다고 하는데, 역시 한자의 멋은 스마트폰 화면이 아니라 붓끝에서 빛을 발하는 듯했다. 유명한 시구(詩句)부터 고사, 그저 본인이 적고 싶은 글귀에 이르기까지 모든 문자들이 주인의 리듬에 따라 제각기 화려하게 춤을 췄다. 무엇보다도 그 아름다운 이야기가 마치 허공에 흩어지는 목소리처럼, 오로지 침묵 속에서 하나하나 메말라 가는 광경을 보고 있노라니 신기루에 사로잡힌 듯 황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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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리장성


이제 우주에서 보인다는 만리장성을 둘러보기로 했다. 실제로 만 리에 이르는지는 모르겠으나 어쨌든 ‘萬’이라는 건 엄청나다는 의미일 터다. 어디서부터 어디로 내달리는지 모를 거대한 벽돌 줄기가 마치 용솟음하듯 거침없이 산과 산, 벌과 벌을 가로지른다. 이때 카프카의 「만리장성을 축조할 때」를 떠올린다. 저 유명한 카프카, 그가 왜 먼 나라의 장성, 그것도 머나먼 과거의 역사(役事)를 상상했던 것일까. 나는 이 길지 않은 작품을 도서관에 선 채로 다 읽었다. 늘 그렇듯이 지독하게 기묘한 이 작품에 마음을 완전히 빼앗기고 말았다. 일종의 ‘보고서’처럼 인물이 아닌 사건으로부터 시발하는 불가해한 이야기 속에 섬뜩한 알레고리가 녹아 있다. 프로이트가 말했는지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으나, 당연한 무언가가 아무런 인과 관계 없이 상궤에서 벗어날 때 우리는 거대한 공포에 휩싸인다. 저절로 움직여서는 안 되는 인형이 느닷없이 춤을 추고, 분명 불을 끄고 잤는데 환하게 불이 밝혀져 있을 때, 우리는 오리무중 속 공포를 느낀다. 만리장성도 그러하다. 이 위대한 건축물을 보고 있노라면, 그 규모와 가늠할 수 없는 공력 때문에 얼굴이 파랗게 질린다. 도저히 보통 인간의 힘으로는 빚어질 수 없는 기적이 버젓이 눈앞에 드러나 있다. 카프카도 틀림없이 두려움을 느꼈으리라.

노동자로 살아 본 사람이라면, 세상만사가 절로 이뤄지는 게 아님을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일순간 거대한 유적에 압도당하다가도 한편 여기에 얼마나 많은 고혈이 소요됐을지 생각해 본다. 꿈을 잃고, 가족을 잃고, 사랑을 잃고, 급기야 목숨을 잃고…… 이 괴물 같은 장성, 아니 그것을 축조하게 한 정체불명의 무지막지한 권력 앞에 스러져 갔을 사람들의 그림자. 소심한 월급쟁이 겸 ‘작가’였던 카프카는 저 공포스러운 토목 공사를 상상하며 자신의 상황을 돌아보았을 것이다. 폭군 같은 회사는 결재와 결재의 연쇄로 시작점을 알 수 없는 명령을 끊임없이 쏟아 낸다. 그 옛날 만리장성을 쌓은 인부들도 어떤 대의에 따라, 실체를 알 수 없는 누군가의 목소리에 이끌려 분골쇄신 공사에 몰두했을 터다. 결코 도착하지 않을 ‘황제의 전갈’을 기다리며, 그들은 만리장성을 꿈꾼다. 자신의 소망도 아닌 그 대공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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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프카


오늘날 중국은 미국과 함께 ‘G2’로 불리며 세계 전체를 주도하고 있다. 사방 모든 곳에 자기들만의 만리장성을 축조하고 있는 것이다. 거대한 쇼핑몰, 넘쳐 나는 사람들, 범람하는 부(富)와 보이지는 병폐들, 그러나 아랑곳없이 굴기하는 붉은 용. 14억이라는 천문학적인 인구만큼이나 다종다양한 꿈과 소망이 도사리고 있을 그곳에, 장차 어떤 자금성이 세워지고 또 얼마나 기나긴 장성이 넘실댈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다만 모든 사람들의 각기 다른 바람이 덧없는 물보라처럼 사그라져 버리지만은 않기를…… 물론 이것은 “오늘도 황제의 전갈(인생의 의미)을 꿈꾸는” 나에게도 해당하는 작은 기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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