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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한권과 떠나는 두 손 가벼운 여행 1편 -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연인』과 베트남 하노이

아시아 · 베트남 · 하노이

문화/명소

여행전문가 칼럼

2018.12.12 조회수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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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음사 문화예술부 편집 담당


인간은 저마다 특별한 목적을 품고 여행에 나선다. 낯선 세계의 풍물을 구경하기 위해, 누군가와 좋은 추억을 만들기 위해, 어쩌면 업무나 쇼핑을 위해 비행기에 오를지도 모른다. 공항에서 자신의 비행기를 기다리는 사람의 수만큼이나 이 세상엔 다양한 여행의 의미와 목적이 있겠지만, 어쨌든 ‘낯선 세계’로 떠난다는, 즉 ‘일상에서 벗어난다’는 점만큼은 공유한다. 이 즐거운 고독을 함께 나눌 최고의 동반자는 누구일까? 익숙하지 않은 언어와 생경한 문화 속에서 철저히 이방인이 됐을 때 여행자에게 기탄없이 손을 뻗쳐 줄 상대는 누구인가?
이국의 기묘한 소란스러움과 미지의 세계가 전해 주는 초조함 속에서, 그것 자체를 하나의 ‘여행적 경험’으로 체험하게 해 줄 최고의 동반자는 어쩌면 책일지도 모른다. 우리를 끊임없이 일상으로 잡아끄는 스마트폰 대신, 낯선 세계와 어울려 여행의 진가를 누리게 해 줄 가벼운 책들을 소개해 보고자 한다. 먼 하늘 너머로 사라진 영원한 청춘의 여행자 생텍쥐페리의 말대로 “행복한 여행은 두 손 가벼운 여행”일 테니까.


여행을 떠날까? 왜? 일상에 파묻혀 지내다 보면 ‘어디론가 떠난다.’ 아니 ‘어디로든 떠날 수 있다.’라는 생각조차 잊고 살 때가 있다.

그것도 아주 많이. 출장 같은 업무를 ‘여행’으로 치지 않는다면, 여행이란 참으로 비일상적인 사건이다. 주변의 숱한 사람들 중에 ‘여행가’라는 직함을 가진 사람이 거의 없는 걸 보면 말이다. 특별한 외식 메뉴처럼 좀처럼 찾아 먹지 않기에 분명 그 맛을 기억하고 있음에도 완전히 잊고 사는 일들이 있다. 어쩌면 ‘여행’처럼 말이다.


가끔 여행을 준비하는 일 자체가 하나의 고된 업무처럼 느껴지곤 한다. 어디로 갈까? 넓은 영지를 지닌 귀족, 도대체 무엇이 자신을 먹여 살리는지조차 모르는 그런 불로 소득자처럼 돈과 시간이 무한정하다면(물론 모든 인간은 죽는다, 라는 전제 아래 자유로운 사람은 없겠지만!), 365개의 하루하루가 빼곡하게 들어찬 달력과 그 모든 날짜마다 가득 자리한 수백 가지 비행 일정 따위를 눈 빠지게 들여다보지 않아도 될 텐데. 때때로 그런 노고가 큰 게임에서 판돈을 따낸 듯한 쾌감을 선사해 주긴 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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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생각 없이 백화점이나 마트에 들렀다가 꼭 필요하지 않음에도, 뭐랄까 두 번 다시 조우할 수 없을 것만 같은 특가에 나온 상품을 별 까닭 없이 구입하게 되듯이, 이번 (베트남) 하노이 여행도 참으로 우연이 이끈 필연이었다. 마침 한가한 시기에, 믿기지 않는 가격으로 항공권이 나와 있었고, 나는 차려진 밥상에 앉아 그저 수저를 들면 그만이었다. 덫 위에 오른 구미 당기는 황금빛 치즈처럼 행운은 가끔씩 사람을 불안하게 하지만, 혹시 모를 사나운 운수마저도 여행의 일부이자 묘미라고 생각되었다.


나는 구식 인간답게, 최신판 여행 책자를 하나 구매해서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하노이에서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일정은 이미 정해져 있었고, 보다 자세한 정보를 얻기 위해선 역시 인터넷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어렸을 때부터 모험심이라고는 그다지 없던 내가 도대체 어디서 무슨 용기를 얻었는지, 장거리 버스와 크루즈 투어 등을 예약했다. 메신저와 이메일만으로 이 모든 일이 이뤄진다는 게 조금은 어색했지만, 아무튼 부지런히 돌아다녀 보기로 결심했다. 큰 기대는 독이 되니까, 다른 후기는 달리 찾아보지 않았다. 온전히 내 것이어야 할 첫인상을 약탈당하고 싶지 않았으니까.


짐을 챙기는 일도 만만찮다. 아무리 베테랑 여행자라도 이 순간에 있어서 만큼은 한결 신중해지리라 생각한다. 옷이나 상비약은 물론이고, 종종 홀로 감당해야 할 ‘고독한 시간’을 때울 방법에 대해서도 골똘히 궁리해 봤다. 역시나 구식 인간이라 스마트폰 게임을 하지도 않고, 설령 게임을 즐긴다 하더라도 그 멀리까지 가서 가상 공간 속에 몸을 누이고 싶지는 않았다. 물론 사람에 따라서는 그걸 더 선호하는 이도 있겠지만 말이다. 그러다가 문득 내게 최초로 베트남의 풍경을 각인시켜 준 한 권의 책이 떠올랐다. (‘가상 공간’이라는 의미에선 문학이나 게임이나 어느 정도 비슷할지도 모른다.) 가끔은 아무 말 없지만, 온종일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주며 내 고독을 달래 줄 친구와 함께 여행을 떠나는 것도 나쁘지 않다. 바로 책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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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그리트 뒤라스, 아마 이 이름보다 『연인』이라는 작품이 더 익숙할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소설 자체보다 1992년에 개봉한 장자크 아노 감독의 영화 「연인」, 아니 그 영화 포스터 속 양 갈래로 머리를 땋아 내린 제인 마치의 얼굴부터 기억해 내는 사람이 적지 않으리라. 이 소설의 분량은 (무척이나 다행스럽게도) 길지 않다. (필자 같은) 뒤라스의 팬이라면 쉬이 알 수 있겠지만, 『연인』은 저자 뒤라스가 한평생 되풀이해 온 이야기의 결정체라 할 수 있다. 밑술을 증류하고 나면 아주 적은 양의 원주(原酒)만 남듯이, 이 작품에는 스스로 고백하고자 했으나 끝끝내 말하지 못했던 첫사랑의 기억이 오롯이 담겨 있다. 프랑스 식민지 시대의 베트남을 배경으로, 목돈을 벌고자 미지의 땅을 찾은 한 가족의 모습이 그려진다. 하지만 장밋빛 꿈은 쉽게 시들기 마련이라, 뒤라스의 가세(家勢)는 잔인할 정도로 기울어 갈 뿐이다. 국가로부터 불하받은 땅은 불모지고, 어머니가 운영하는 학교는 제대로 굴러가지 않으며, 술과 도박에 빠진 폭군 같은 큰오빠의 악행 속에 뒤라스와 작은오빠는 고통받는다. 그러던 중, 새 학기를 맞아 기숙 학교로 돌아가던 뒤라스 앞에 중국인 부호가 나타난다. 이때 황토빛 메콩강이 아스라이 펼쳐진다. 그 둘은 바로 이 강을 건너는 배 위에서 만났으니까.


물론 내가 하노이에서 만난 강은 메콩강이 아니었다. 듣자 하니, 홍강이란다. 하지만 내가 상상해 온 베트남의 하천을 그대로 구현하듯, 홍강의 물줄기는 지하의 모든 흙더미를 통째로 풀어 놓은 것처럼 검붉은 황토빛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7월의 하노이는 장마를 넘어 홍수 시즌이고 고지대의 모든 토괴가 무자비한 빗발에 무너져 바다까지 도달한단다. 뒤라스의 『연인』에 그려지는 첫사랑도, 이런 장맛비처럼 한바탕 거세게 쏟아져 내렸다가 태연자약하게 흩어지고 만다. 적절한 초점을 맞추지 않으면 결코 보이지 않는 렌즈처럼, 그들의 첫사랑은 역시 서툴렀던 탓에, 어쩌면 사랑이라는 엄청난 무언가를 마주할 참된 용기가 없었던 까닭에, (사실상 서로를 사랑하였던) 그 당시엔 절대 보이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그저 소나기처럼 한 번 훑고 떠나가 버리리라 단정하고 감히 분석했을 테지만, 이 놀라운 첫사랑은 매년 찾아오는 장맛비처럼 두 사람의 목숨이 끊어지는 그 순간까지 그들의 삶을 지배했다. 불투명하게 범람한 홍강의 모습을 보며, 지금껏 내가 꿰뚫어 보지 못한 소중한 것들에 대해 생각해 본다. 물론 이 악몽 같은 재난에 고통받을 베트남 사람들에 대해서도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될 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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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인』은 아름다운 소설이다. 뒤라스는 사랑만큼이나 고통의 의미를 진지하게 여겼다. 인생 전체가 해피엔드로만 가득 차 있다면 더없이 행복한 일이리라. 그러나 애석하게도 우리들의 인생은, 참으로 짓궂고 온갖 소망들을 배반하는 방식으로 우리에게 많은 가르침을 전해 준다. 가끔은 실패와 고생 탓에 주름진 얼굴이 아름답다고 느껴진다.(『연인』의 첫 부분에서도 이러한 관찰이 아주 시적으로 묘사된다.) 아름답다? 그게 적절한 표현일까. 어쨌든 데생을 할 때도 빛과 어둠을 모두 그리지 않으면 안 되듯, 인생의 참된 아름다움 또한 빛과 어둠, 그 모든 총체 속에 구현된다. 실패한 첫사랑, 굳이 첫사랑이 아니더라도 그저 바람으로 남거나 찬란한 계획으로만 남은 어떤 사랑의 기억은 누구에게나 하나쯤 있으리라. 그런 사랑을 경험해 본 사람에게만 진정으로 사랑을 할 기회가 주어지는 건 아닐까? 뜨거운 불씨를 품어 본 사람만이 새로, 그리고 더 크게 불타오를 기회를 지니듯이 말이다. 이뤄지지 않은 소망이 꼭 안타까운 것만은 아니다. 여행지에서 장마를 만나더라도 그 자체로 하나의 추억이 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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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유상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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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3

  • 2019.01.30 댓글

    동남아시아의 신흥국 베트남 Goooooood

    • 2019.01.29 댓글

      책 한권과 함께 떠나고 싶게 하는 여행지들입니다. 보내준 메일로 많은 정보를 볼 수 있어 감사합니다. 행복한 하루 보내시구요~.

      • 2018.12.26 댓글

        책을 가지고 떠나는 여행을 늘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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