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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 스토리

제적이냐, 복학이냐 – 그림으로 기록하는 여행, 아트로드 8편

유럽 · 영국 · 런던

문화/명소 음식

여행전문가 칼럼

2018.11.07 조회수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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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티스트 김물길


‘모리스와의 만남’
Spicheren, France


-여행 343일차, 모리스네


“7개월 만이야!”
기차역으로 나를 데리러 온 모리스를 와락 끌어안았다.
모리스는 아프리카 여행 중 나미비아에서 짐바브웨까지 약 2주간 트럭투어를 할 때 단짝처럼 함께 했던 독일친구이다. 대화도 가장 잘 통했기에 누나, 동생처럼 항상 함께 다녔었다. 트럭투어를 마치고 나는 모리스에게 이후에 있을 유럽 여행 중 독일로 너를 다시 만나러 가겠다고 약속 했었다. 그리고 정말 그 약속대로 7개월 만에 우리는 다시 만났다.
모리스네 가족은 독일인이지만 독일 국경에 가까운 프랑스도시에 살고 있었다. 모리스네 집에 도착해서 그의 부모님과 남동생을 만났다. 어머니는 굉장히 유쾌하시고 따뜻한 분이셨다. 아버지는 분위기 있는 멋진 외모와 자상한 미소를 가지신 분이셨다. 모리스가 끔찍이도 아낀다는 남동생은 정말 그가 항상 말했듯이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모리스의 가족들은 나를 정말 특별하게 대해주었다. 그 이유는 모리스는 지금까지 친구들을 집에 데려오는 일이 거의 없었다고 한다. 나는 그런 모리스가 데려 온 몇 안 되는 친구였기에 가족들에게 더 특별한 것이었다. 평일에는 아버지와 모리스는 일을 나갔기 때문에 보통 나는 평일 낮 시간을 어머니와 단 둘이 보내는 시간이 많았다. 어머니와 마트에 가서 장도 보고 주변 동네 드라이브도 하고, 거실에 앉아서 수다도 떨었다. 영어를 잘 못하시는 어머니와 독일어를 전혀 못하는 나였지만, 어머니의 단순한 영어 몇 단어로도 충분히 재미있는 대화가 가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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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스런 모리스의 가족들


매일 아침 방문을 열고 나가면 항상 모리스는 방문 앞에 쪽지를 써 놓고 갔다.
‘나는 너를 다시 볼 수 있게 되어 너무 기뻐.’
‘좋은 아침이야. 이따가 봐.’
모리스는 은근 로맨티스트 친구였다. 그 편지를 기분 좋게 읽고 잘 접어서 가방에 차곡차곡 넣어두었다. 그리고 아침을 먹기 위해 부엌으로 갔다. 그 날 아침상도 예쁜 접시에 빵이 있고, 시리얼과 싱싱한 과일이 보기 좋게 놓여있었다. 그리고 반숙이 된 계란이 계단 전용 접시에 올려져있었다. 계란 위를 톡톡 깨서 작은 구멍을 내고 작은 숟가락으로 그 속을 파서 먹는 것이었다. 이렇게 정성스럽게 매번 차려주시는 아침식사에 대해 어머니께 너무 감사했다. 나는 아침식사를 마치고 주변 연필꽂이에 꽂혀 있던 분홍색 형광펜을 꺼내 속을 깔끔하게 다 파서 먹은 계란 껍질에 ‘Thanks’라고 적었다. 정말 진심을 담은 짧은 표현이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은 그 계란이 1년이 넘도록 모리스네 부엌에 자리 잡고 있었다고 한다.)

주말, 모리스와 함께 시내구경에 나섰다.
크리스마스가 오려면 아직 좀 남았는데 시내 곳곳에서는 이미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그 와중에 색색으로 치장한 거리 사이에서 유난히 눈에 띄는 한 장면과 마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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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와 함께 거리에서 구걸을 하는 거지였다. 쓰고 있던 검은 모자를 앞에 두고 고개를 푹 숙이고 잠을 자고 있었다.

쌀쌀한 날씨에 비해 너무 가벼운 옷차림과 그 옆에 웅크리고 자고 있는 개의 모습을 보니, 크리스마스 향기가 가득한 거리지만, 그에게는 크리스마스는 그 어떠한 의미도 가지고 있지 않은 듯해 보였다.
나는 그날 그림으로 돈을 구걸하기 위해 내어 놓은 그의 검은 모자에 푸릇한 나무를 하나 심어 주었다. 그 나무가 무럭무럭 자라서 차가운 바람을 막아주고 그에게 그늘이 되어 주는 상상을 하며.

3나무가 자라는 모자, France


나는 모리스의 집에서 약 일주일이라는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프랑스를 거쳐 영국을 여행한 후 다시 모리스네로 돌아와 함께 크리스마스를 보내기로 약속을 했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다시 모리스네로 돌아가지 못했다. 프랑스와 영국여행을 마치고 일정을 계산해보니, 서둘러야 했기에 아쉬운 마음을 붙들고 여행자로써의 여정을 선택했다.)
아름다운 가족들과 이별하는 날, 출근하는 아버지, 모리스와는 아침에 이른 작별인사를 했다. 그리고 기차 시간에 맞춰 어머니는 나를 태우고 기차역으로 향하셨다. 혹시 이동 중에 배가 고플까 따끈한 빵도 챙겨주셨다. 그리고 기차를 기다리는 승강장에서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내셨다. 그것은 케이크 모양의 작은 양초와 작은 상자였다.
“곧 있으면 네 생일이지? 혹시 그때 혼자라도, 케이크가 없더라도 이 케이크로 꼭 생일 축하하렴. 그리고 이 상자는 너에게 주는 선물이야. 기차 타면 열어봐.” 나는 어머니를 꼭 안았다.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기차가 승강장에 들어오고 창문을 통해 손을 흔들며 멀어지는 모습을 끝까지 눈으로 잡으며 이별을 했다. 그리고 작은 상자를 열어보았다. 그 안에는 약간의 돈과 편지가 들어있었다.
‘행운을 빌어. 많은 키스를 보내며.’
편지의 글씨가 흐려진다. 뜨겁게 차오른 눈물이 편지 위로 떨어질까 고개를 더 푹 숙였다.
파리로 향하는 기차는 그 어느 때보다 따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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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리스 가족에게 선물한 초상화


‘제적이냐, 복학이냐’
London, Engl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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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ndon, England


2012년 11월 영국 런던.
부모님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그 내용은 학교에서 우편 하나가 왔는데 이번에 복학신청을 하지 않으면 제적이 된다는 안내문이었다.

나의 여행은 대학교를 3학년까지 마친 상태로 2011년 12월에 시작 되었고 여행을 시작했던 해는 이미 대학교를 휴학한지 2년째 되는 해였다. 내가 다니는 대학교(경희대학교)는 최대 일반휴학 기간이 3년이었고, 나는 휴학을 하고 2년 반 동안은 여행자금을 모으기 위해 일을 했고, 처음 여행 계획은 딱 1년이었다. 그런데 여행을 시작 한 지 1년이 되어가는 시점에서 그 동안 돈을 악착같이 아낀 덕분에 1년을 예상한 여행자금 중 반이 남은 상태였다. 이것은 나에게 시간만 있다면 여행을 더 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하지만 이번에 대학에 복학하지 않는다면 나는 결국 제적을 당하게 될 것이다.
부모님은 그 어떠한 말없이 그냥 이런 안내문이 왔다는 것을 알려주셨고, 그 이유는 아마 나의 생각을 먼저 듣고 싶으셨던 게 아닐까 싶다. 물론 제적을 당한다고 학교를 졸업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제적 후 1년이 지나면 다시 서류심사와 면담을 통해 입학금을 내고 이수한 학년을 이어서 재입학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아무래도 대학교 기록에 ‘제적’이라는 것이 남는 것도 좋지 않을뿐더러, 학생이라는 신분에서 여행에 빠져 지금 해야 하는 학업을 미룬다는 것도 그렇게 좋지만은 아닌 선택일 수도 있었다.

결정을 내려야 했다. 이 선택에 있어 지금까지 해 왔던 나의 여행을 다시 되짚어 봐야 했고, 이후의 나의 모습 또한 상상해 봐야 했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이 도전에 있어, 스스로 정말 자신 있고 당당하게 계획한 목표를 잘 지나왔고 계속 진행 할 수 있을까가 가장 큰 고민의 주제였다. 나에게는 나름의 큰 도전이었기에 시간만 질질 끌면서 구멍이 많은 여행의 이야기로 끝내고 싶지는 않기 때문에 여행을 택한다면 앞으로 갈 길에 대해 ‘내가 진짜 확신 있게 잘 할 수 있을까.’라는 문제는 정말 중요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 부분에 확신을 가지고 있다면 제적이냐 복학이냐 라는 고민의 문제는 쉽게 풀릴 수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많은 생각을 해 본 결과. 나는 이 도전을 진행해야겠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가장 큰 이유는 내가 이 아트로드를 하는 동안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 확신 이라는 것은 나에 대한 쓸데없는 자신감이 아니라, 이 아트로드를 내가 하고 싶은 만큼 충분히 해야 만이 내가 만족하고 행복할 것이라는 확신이었다. 또 다른 이유는 이 여행을 하면서 가장 크게 깨달은 ‘행복’이라는 주제였다. 여행하면서 어떻게 하면 ‘행복하게 인생을 살 수 있을 까’ 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많이 하곤 했다. 간단히 말하자면 아트로드를 계속해야 행복하다. 라는 것이다. 지금 선택한 이 길은 ’행복‘ 과 ’여유‘를 가지고 즐길 수 있는 많지 않은 시간 중 하나라는 것을 깨달았다. 다 때가 있다고 하지 않나. 학교는 조금 늦을지 몰라도 1년 뒤 다시 복학할 수 있는 기회가 있지만, 이것은 이 때, 이 마음이 아니면 이 순간의 행복을 내 평생 다시 돌아오지도 다시 느낄 수 없을 테니까.
이렇게 결정을 내리고 부모님께 나의 의견을 말씀 드렸다. 나는 당연히 제적은 반대 하실 것이라 생각했었다.

그런데 부모님으로부터 도착한 메일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네가 심사숙고해서 내린 결정일 테니 네 의견에 반대하지 않겠다. 우리는 너를 믿고, 네 선택을 존중한다. 너무 걱정하지 말고 부디 건강하게 네 목표를, 꿈을 잘 완성하길 바란다.”
그 순간 부모님의 나에 대한 믿음과 그 동안 만났던 아름다운 심장을 가진 사람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면서 어찌나 눈물이 펑펑 흘러내던지, 그 순간이 여행하면서 행복했던 순간 중 하나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시간이 흘러 나의 이 결정이 옳았든 아니었든지 간에, 지금 이 시간만큼은 씩씩하게 나 스스로를 믿어볼 생각이다.

잘해보자 김물길. 그리고 계속 될 나의 아트로드. 화이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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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떠난 지 1년이 되는 날 그린 자화상


[ Morocco ]


몇 달간의 유럽여행을 마치고 스페인을 거쳐 페리를 타고 아프리카 북 서단에 있는 모로코 왕국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 모로코왕국을 마음껏 내 스케치북에 담았다.
모로코에서는 2012년 12월 28일-2013년 1월 16일까지 총 20일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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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죽신발 만드시는 할아버지, Tetouan, Morocco


모로코는 수공예 가죽제품이 유명하다.
한 땀 한 땀 바늘을 엇갈리며 신발을 만들고 계신 할아버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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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기시장, Fes, Moroc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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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스의 기타


페스, 메디나에 있는 큰 시장
신기하도록 독특한 모습을 한 기타들이 대롱대롱 걸려있다.
너희는 모두 어떤 목소리를 가지고 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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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nnery, Fes, Moroc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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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llow Leathers, Fes, Morocco


페스는 가죽염색공장인 테너리가 유명하다.
악취가 진동하는 테너리에서 모로코 가죽이 각각의 색을 입는다.
하얀색, 노란색, 빨간색 구덩이에서 수없이 적혀져 나오던 가죽들.
동물의 변이 포함 되어 있다는 천연재료만으로 작업이 진행되기 때문에 그 곳에서 강하게 찌르는 그 악취는 피할 수 없다. 테너리의 모습을 내려다보러 계단을 올라가는 길에 한 아저씨가 친절하게 민트 잎사귀를 건네 주셨다. 그 덕분에 다행히 어느 정도 악취의 공격을 막을 수 있었다.
당시 테너리에서는 웅덩이에서 가죽들이 염료에 적혀지고, 그 위 작업장 지붕에서는 노랗게 염색된 가죽들이 하나하나 펼쳐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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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Mosque, Casablanca, Moroc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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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과 니캅, Casablanca, Morocco


모로코에 들어설 때 궁금했던 것 한 가지는 무슬림 국가이기 때문에 술을 쉽게 구할 수 있을 까 였다. 하지만 현지 친구 라니아가 말하길,
"밤에 취하도록 술을 마시고 모스크에 가서 기도하는 게 대부분 사람들의 일상일 걸."
위에 그린 것은 모로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무슬림 여자들의 '니캅'의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 니캅: 눈만 빼고 다 가리는 무슬림 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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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rocco Shoes Display, Marakesh, Morocco


모로코 전통 신발.
신발꽂이에 꼼꼼히 꽂아놓은 신발들의 모습이 예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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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hara Desert, Merzouga, Morocco


모로코에 왔으니, 사하라사막을 밟아보자는 의미에서 찾은 메르주가.
사막 언덕 꼭대기에 올라앉아 아무 생각 없이 한 동안 자리를 지켰다. 양손에 느껴지는 모래가 참 곱다.

한 줌 쥐면 솔솔 손가락 사이로 모래가 신기루처럼 흘러나간다.
나는 이만한 작업재료가 또 어디 있을 까 생각하며 가방에 꾸겨져 있던 봉지에 사막모래를 담아 같이 내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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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과 소녀, Sahara Desert, Moroc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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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roccan Sandwich, Morocco


모로코에 흔한 거리음식 샌드위치다.
우선 들어가는 재료는 가게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보통 쌀, 가지, 삶은 감자, 감자튀김, 올리브, 토마토, 양파 정도이다.

우선 샌드위치에 쌀과 가지가 들어간다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어딜 가나 절대 빠지지 않는 저 모로칸 빵. 우리가 밥을 먹는 것처럼 거의 모든 음식이 저 빵과 함께 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모로코 여행에서 이 모로칸 빵은 절대 피해 갈 수 없는 필수 아이템임에 분명하다. 둔탁하니 둥글넓적한 게 좀 정이 가는 외모다. 내일도 이 빵으로 아침을 시작하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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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ange juice, Marrakesh, Moroc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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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vocado juice, Marrakesh, Morocco


모로코의 마지막 여행도시가 된 마라케시.
사실 마라케쉬에서 특별하게 관광하러 다닌 것은 없다. 점심 즈음 나가서 거리음식을 사먹고 시장을 둘러보고, 오렌지 주스 마시고, 저녁 즈음에는 가장 좋아하는 아보카도 주스 마시며 마라케시 광장에서 매일 밤 열리는 야시장에서 저녁을 먹는 게 매일 하루 일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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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musician, Marrakesh, Morocco


그렇게 나는 모로코를 마지막으로 남미로 향했다.
나의 아트로드는 계속 된다!

당신 여행스타일에 맞는 천만 가지 여행상상 KALMASTER travel.koreanai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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