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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개월 만에 가족 상봉 - 그림으로 기록하는 여행, 아트로드 5편

중동/아프리카 · 이집트 · 카이로

문화/명소

여행전문가 칼럼

2017.03.10 조회수4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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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티스트 김물길

 

8개월 만에 가족 상봉


[ Egyp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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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ce Of sphinx, Egypt

 

 

‘내 배낭은 어디에’
Cairo, Egypt

 

상처만 남은 에티오피아에서 도망치듯 나와 그 다음 목적지인 이집트 카이로 공항에 도착했다.
입국수석을 마치고 컨베이어벨트 앞에서 짐이 나오길 기다렸다.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나의 파란 레인커버 배낭이 나오지를 않는다. 같은 비행기를 타고 온 사람들은 하나 둘씩 자기 짐을 찾아 나갔다. 그리고 빙빙 돌아가는 벨트, 내 배낭은 끝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설상가상.
끝났을 거라 생각했던 악몽은 계속 진행 중이었다.

사라진 배낭에는 여행 할 때 필요한 물품들 말고도 그 동안 그렸던 아프리카 그림들이 들어있었다. 다른 것들은 잃어버리더라도 그림만은 절대 잃어버리면 안 되는 소중한 것이었다. 당장 항공사 사무실로 가서 분실 된 배낭을 얘기하니 배낭의 생김새와 연락 가능한 핸드폰 번호를 적으란다. 이미 에티오피아에서 빼앗긴 핸드폰. 어쩔 수 없이 반대로 사무실 전화번호를 내가 받아 전화하기로 했다. 내 소중한 배낭을 찾아내라고 바닥에 누워 깽판을 치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참고 참았다. 없어진 짐 번호와 사무실 전화번호가 적힌 종이 쪼가리를 손에 쥐고 공항 의자에 턱-썩 앉았다. 눈물이 끊임없이 흘러내렸다. 억울함과 서러움으로 가득한 눈물이었다. 에티오피아에서 받은 마음의 상처가 아직 아물지도 않았는데 이런 식으로 그 위에 소금을 뿌리다니, 너무 아파 미칠 지경이었다.
하지만 공항에 계속 앉아 있어봤자 해결 될 일은 아니었기에, 시내로 이동해 비교적 저렴해 보이는 숙소로 들어갔다.
부족한 돈에 방 값의 일부를 지불하면서 숙소 직원에게 나에게 겹친 불운에 대해 털어놓았다. 누구에게라도 말하지 않으면 미쳐버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직원은 진심으로 걱정해 주면서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말하라고 했다.
 “고마워요.”

한 시간 정도가 지났을까, 누군가 내 방문에 노크를 한다. 같은 숙소에서 지내는 외국인 여행자 몇 명이 서 있었다.
“안녕하세요. 당신 얘기를 직원한테 들었어요. 짐은 꼭 찾을 수 있을 거예요. 제 방은 화장실에서 두 번째 방이니까 필요한 거 있으면 언제든지 찾아와요.”
정말 감사하게도 숙소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나를 걱정해 주었다.
7월의 이집트는 그야말로 찜통이라 여벌의 옷이 꼭 필요했는데, 수재민 돕기에 나선 사람들처럼 다들 티셔츠, 바지 등을 골라 나에게 나눠주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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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yramids, Egypt

 

사건 3일 째, 항공사 사무실과 연락이 닿았고 직원이 공항에 배낭을 찾으러 오라고 했다
‘드디어 내 가방을 찾았구나!’
기쁜 마음에 그 동안 도와준 숙소 친구들에게 인사를 하며 한달음 공항으로 갔다.
공항에서 만난 직원은 나를 데리고 어딘가로 향했다. 분실물을 보관하는 창고였다.
창고 문은 아주 크고 높았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수 만개의 분실물로 가득 찬 넓은 공간이 나타났다. 그리고 곧 직원이 나에게 한마디 했다.

“이제 너의 가방을 찾아봐.”

당황은 했지만 빨리 정신을 차리고 냉큼 창고에 들어가 눈에 불을 켜고 커다란 창고에 차곡차곡 쌓여있는 짐들을 샅샅이 뒤지기 시작했다.
‘에이 설마 이 수많은 짐 중에 내 배낭 하나가 없을까.’
하지만 점점 확인할 짐들이 줄어들어감에 따라 동시에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지막 남은 짐이 내 짐이 아닌 것을 확인하면서 내 눈에는 마치 약속이라도 했던 것처럼 닭똥같은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그리고 내가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직원들에게 신세한탄을 하기 시작했다. 내가 여기 오기 전, 에티오피아에서부터 얼마나 힘들었는지, 핸드폰도 돈도 다 빼앗긴 채 이집트에 왔는데 오자마자 배낭마저 없어지고, 이건 너무 한다고, 이제는 배낭을 찾던 말던 한국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말이다.
그 뒤로 말도 제대로 못할 정도로 흐느끼는 나를 보고 너무 안쓰러웠는지 직원이 입을 열었다.
“울지 마요. 우리 공항 안을 돌아다니면서 한 번 더 찾아봐요. 찾을 수 있을 거예요.”
나는 직원과 함께 공항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며 배낭을 찾기 시작했다. 커다란 카이로 공항에서 우리는 꽤 오랜 시간을 돌아다녔다. 타 항공사 사무실에 쌓여있는 짐부터 공항 내에 모든 컨베이어벨트 주변까지 샅샅이 뒤졌다.
그리고 몇 시간이 지났을까.

“어?!”

거의 마음을 비우고 모든 것을 포기 한 그 때, 내 눈에 익숙한 색이 들어왔다.
‘파란 레인커버’
어느 컨베이어벨트 옆에 쌓여있는 짐들 사이에서 내가 아는 파란색이 살짝 보였다.
바로 뛰어가 확인을 했다. 나는 그 자리에서 주저앉았다. 그리고 또 울었다.
내 배낭이 거기에 있었다.
전쟁터에서 어쩔 수 없이 생이별했던 가족을 다시 찾은 심정으로 배낭을 끌어안고 울었다.
다시는 못 찾을 것 같았던 내 배낭을 3일 만에 찾았다. 기적처럼 찾았다. 아마 이 직원의 도움이 없었다면 나는 절대 내 배낭을 찾을 수 없었을 것이다.

“고마워요. 고마워요. 정말 고마워요.”

몇 번이나 고개를 숙여 직원에게 고맙다고 인사를 했는지 모르겠다.

“당신 정말 운이 좋네요. 이렇게 행운이 다시 시작된 거니까 남은 여행도 포기하지 말아요.”
직원은 공항 편의점에서 과일 주스를 하나 사서 뚜껑을 열어 주며 말했다. 주스가 정말 달았다.

낡아빠진 파란 레인커버가 덥힌 무거운 16킬로그램의 배낭을 등에 업고 그 누구보다 행복하고 가볍게 숙소로 돌아왔고, 숙소에 있던 모든 이들에게 엄청난 하이파이브 세례와 축하를 받았다.

사람들은 나에게 어떻게 그렇게 오랜 시간 동안 여행 할 수 있었냐고 많이 물어보신다.
그럼 나는 고민 없이 대답할 수 있다.
혼자 건너기 힘든 세찬 물살을 만났을 때마다 징검다리 역할을 해 준 사람들이 있었기에 계속 나아갈 수 있었던 거라고. 내 걸음을 움직여준 것은 이 사람들이었다고 말이다.
“고맙습니다. 내 여행길을 이어가게 해주셔서.”
그리고
‘배낭아, 이제는 날 떠나지마. 내가 더 잘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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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t but charming, Luxor, Egypt

 


‘발등에 넋두리’
Cairo, Egyp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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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 my feet, Cairo, Egypt

 

그간의 긴장이 풀리며 체력까지 무너졌는지 배낭을 찾은 다음 날부터 심한 몸살과 고열이 날 괴롭혔다. 약을 먹고 지친 몸으로 침대에 누워있는데 보이는 건 좁은 천장과 내 발등 뿐. 아프리카를 거쳐 온 내 발등에는 쪼리 자국이 선명했다. 마치 전쟁 이후 남은 영광의 상처같이 보여 마음이 애잔했다. 성공적인 여행에 큰 몫을 한 소중한 발. 앞으로도 고생해 줄 발에게 넋두리한다. 오래된 친구처럼 말대꾸 하나 없이 묵묵한 들어주는 발이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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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 사막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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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nnec Foxes, Egypt

 

 

[Israel]


‘8개월 만에 가족 상봉’
Tel aviv, Israel

 

8개월 전, 여행을 떠나던 날 얼굴을 본 것이 마지막이다. 여행 도중엔 마음 약해 질까 봐 많아야 일주일에 한번 메일 주고받은 것과 두어 번 통화한 게 다였다. 원래는 다정다감한 부모님이신데 이상하게 내가 메일을 보내면 항상 무뚝뚝하게 답장을 하시곤 했다. 왜 그렇게 답장을 하셨는지 딸인 나는 잘 알고 있다. 마음 약해지지 말라고, 충분히 집을 그리워하고 있을 막내딸임을 너무나도 잘 알기에 당신 스스로가 더 냉정하고 무뚝뚝해지시기를 선택하신 것이다.

여행을 하는 동안 가족에 대한 사랑은 더 뜨거워졌고, 힘듦을 이겨낼 때마다 엄마의 간절한 기도가 느껴졌다.

이집트에서 이스라엘로 이동하는 발걸음이 가볍다. 마치 그간의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기분마저 든다. 바로 며칠 뒤면 그토록 그립던 엄마아빠를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부모님이 이스라엘로 오는 이유는 단 하나. 딸을 만나기 위해서이다.

‘그 날’ 저녁, 엄마 아빠가 알려준 도착시간에 맞춰 이스라엘 텔아비브 공항으로 향했다. 그런데 내가 시간을 잘 계산하지 못한 탓에 공항에 너무 늦게 도착해 버렸다. 서로 연락할 길도 없었던 터라 공항에 나타나지 않는 나를 얼마나 걱정하고 계실까 그게 더 걱정되었다.
약속보다 한 시간 늦게 공항에 도착했다. 그리고 부모님이 나오셨을 출구를 찾아 전속력으로 달렸다.
“엄마, 아빠!”
딸의 목소리를 알아채시고 주변을 두리번거리시는 엄마아빠, 그리고 곧 까무잡잡해진 막내딸을 발견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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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에서 부모님과

 

나는 어렸을 때부터 항상 한약을 달고 살았다. 몸이 선천적으로 약해서 살도 안 찌고 잔병치레도 많았다. 그랬던 딸이었는데, 지금 눈앞의 딸은 앞뒤로 커다란 배낭을 메고 뜨거운 태양아래 속절없이 타버린 까무잡잡한 피부에 예전보다 족히 5kg은 더 찐 몸으로 변해 있었다. 하지만 그 딸은 여전히 엄마아빠 앞에선 한 없이 철없는 막내딸이었다.

엄마아빠를 와락 안았다. 너무 그리웠고, 보고 싶었어요.
여행을 하면서 만나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물어보는, 지금까지 어디가 가장 좋았는지, 어디 음식이 맛있었는지 등의 질문은 엄마아빠에겐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어디 아프거나 다친 데는 없는지, 사건 사고는 없었는지 물어보는 것이 엄마아빠의 가장 중요한 질문이었다. 우리는 공항의자에 앉아 그 동안 못 본 시간을 이곳에서 다 채우기라도 할 듯 서로에게 눈을 떼지 않고 한참 얘기를 나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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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아빠와 함께 한 일주일간의 이스라엘 여행은 그 어느 때보다도 행복했다.
텔아비브 해변으로 간식을 싸가지고 가서 수영과 함께 피크닉을 즐겼다. 우리 셋이 모두 수영복을 입고 바다에서 첨벙거리며 놀았던 때가 언제였던가. 셋이서 손을 잡고 파도를 뛰어 넘고, 물에 빠져가며 까르르 웃던 참 행복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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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내에서 함께 장을 보면서 신기한 음식도 같이 먹어보고, 가이드와 함께 편하게 에어컨 나오는 차를 차고 다니며 관광지를 돌아다니는, 내가 그 동안 못해본 편안한 여행을 함께 하기도 했다. 헐어빠진 티셔츠를 버리고 시장에서 새 티셔츠도 사고, 그 동안 먹고 싶었던 음식들도 마음껏 먹었다. 8개월간 서로 못했던 이야기들을 일주일안에 다 하려니 하루 한 시간이 어찌나 소중하고 아쉽던지. 힘들 땐 그렇게 안 가던 시간이었는데 눈 깜짝할 사이에 일주일이 지나가 버리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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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wishs, Jerusalem, Israel


“벌써 내일이야? 내일 가야 돼? 나 그냥 엄마아빠랑 한국 돌아갈까?”

“할머니가 이번에 너 만나면 위험하게 여행 그만하라 하고 한국으로 데리고 오라고 하셨어. 그런데 엄마아빠는 네가 여행하는 거 응원해. 네가 목표한 거 다 이루고, 즐기고, 고생도 하고 와. 우린 너한테 한국 돌아가자는 말 안 할거야.”

부모님은 역시 나보다 강하시다.

안 왔으면 했던 ‘그 날’이 왔고, 우리 셋은 함께 공항으로 갔다.
엄마아빠와 작별할 때, 절대 울지 않겠노라고 공항으로 오는 내내 다짐을 했었다. 그런데 그렇게 꾹 참고 있었던 눈물샘이었는데 결국 말을 듣지 않고 눈물을 쏟아내 버렸다.
우는 딸의 벌건 얼굴을 헤어지는 마지막 장면으로 보여드리고 싶진 않았는데...
울지 말라고 눈물을 닦아 주시던 아빠의 따뜻한 손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리고 금방이라도 흐를듯한 눈물을 잡고 있는 엄마아빠의 뭉클한 눈을 보았다.

“밤이 더 늦기 전에 얼른 가봐. 엄마아빠는 이제 들어갈게.”

시내로 돌아가는 내내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다시 한국에 돌아가면 볼 엄마아빠인데 왜 이렇게 서럽게 우는지 머리로는 이해가 안되었지만, 흐르는 눈물을 머리로 멈추게 할 수는 없었다.

그 뒤로 여행 중 부모님의 무뚝뚝한 답장은 여전했다.
그리고 한 수 더 내다보는 부모님의 깊은 생각과
나를 사랑하는 마음이 전달되는 것도 여전했다.

 

asd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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