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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의 에티오피아 - 그림으로 기록하는 여행, 아트로드 4편

중동/아프리카 · 이디오피아 · 아디스아바바

음식

여행전문가 칼럼

2017.02.15 조회수52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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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티스트 김물길

 

 

상처의 에티오피아[Ethiopia]

 

이번 여행을 남녀의 ‘연애’에 비유한다면 에티오피아는 그 동안 믿었던 남자친구에게 제대로 뒤통수 맞았던 경우라고 할 수 있겠다.
결과적으로 나에게 가장 많은 상처를 남겼던 곳.
절대 잊으려야 잊을 수가 없는 나라.
에티오피아의 이야기이다.

 

ㅁㄴㅇㅎ 

 

 <to Ethiopia>

 


‘인제라, 처음으로 맞지 않는 음식을 발견하다.’
Addis Ababa, Ethiopia

 

여행을 하면서 살이 쪘다. 분명 힘들게 여행하는데 살이 쪘다.
그 이유는 물론 야채와 과일을 충분히 섭취하지 못하고 항상 기름기 많은 저렴한 길거리 음식들로 배를 채웠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또 다른 이유라면 내가 세계 각 지역의 모든 음식을 큰 거부감 없이 잘 소화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보통 여행자들이 음식으로 힘들어 하는 인도에서도 매일 현지 음식으로 4끼를 먹으며 단 2달 만에 5킬로를 찌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과연 이 세상에 나에게 맞지 않는 음식이 있을까 싶었다. 바로 그것과 만나기 전까진 말이다.

두 달간의 파란만장했던 마다가스카르 여행의 온기가 채 식기도 전에 나는 비행기에 올랐다.
안타깝게도 공항에서 출국 스탬프를 찍는 직원 놈이 내가 여권 커버 깊숙이 꽃아 놓은 50달러를 빼간 것을 비행기에 탄 후에 알게 되면서 마다가스카르와의 이별의 순간은 그리 유쾌하게 마무리 되지는 못했지만 말이다. 그 비행기는 케냐 나이로비에 아침 10시 반에 도착했고, 나이로비 공항에서 꼬박 17시간을 기다린 끝에 다음 날 새벽 3시 반에 에티오피아 행 비행기를 탔다.
묵직한 피곤함을 온 몸에 두르고 에티오피아의 수도 아디스아바바 공항에 도착했다.
아디스아바바 카우치서핑 친구 ‘와코’가 미리 설명해 준 대로 공항 앞에서 노란 색 택시를 타고 와코네 집으로 찾아갔다. 집에 도착한 후, 와코와 함께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사신다는 와코 아버지의 집으로 가서 밥을 먹었다.

 

 

ㅁㄴㅇㅎ 

 <Injera, Ethiopia>

 

 

그 음식의 이름은 ‘인제라’.
'인제라'는 에티오피아의 전통음식이자 에티오피아 사람들이 가장 흔히 먹는 음식이고 테프라는 곡물로 만든 반죽을 구워 팬케이크처럼 동그랗게 만든 것이다. 반죽의 식감은 마치 얇은 스펀지와 같았다.
그리고 그 반죽을 넓은 접시에 펴서 올린 후, 그 위에 양념된 고기나 야채를 반찬으로 올린다. 먹는 방법은 손으로 반죽을 조금씩 뜯어서 그 위에 올려진 반찬들과 함께 먹는 것이다.

처음에 그 맛을 보았을 때 시큼한 맛이 나는 반죽과 양념된 반찬들의 조화가 그리 나쁘진 않았다. 늦은 점심시간이었기에 출출해서 배불리 한 접시를 뚝딱 해치웠다.

그날 저녁, 내 몸이 이유 없이 아프기 시작했다.
갑자기 열이 나고 몸에 오한이 오면서 속은 체한 것 같은 느낌에 미식거림이 함께 왔고, 결국 새벽 내내 화장실에서 먹은 것을 다 게워내기에 이르렀다. 얼마나 속이 불편했으면 혼자 바늘로 열손가락을 다 딸 정도였다. 고통을 참고 바늘로 찌른 열손가락에서는 검붉은 피가 나왔다.
사실 그때까지만 해도 내가 몸이 피곤해서 몸살에 걸리고, 음식을 급하게 먹어서 체를 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며칠 뒤 아디스아바바에서 에티오피아 북부 티그레이주에 있는 오래된 도시인 ‘악숨’으로 이동하는 길이었다. 아디스아바바에서도 거리가 꽤 있었던 도시이긴 하지만 하루면 갈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하루 만에 갈 방법은 없었고, 1박 2일이 걸린다고 했다. 그런데 이 버스는 밤새 달려 1박2일이 아니라 아침에 출발해서 저녁 6시에 중간도시에 도착하면 승객들이 그 주변에서 알아서 숙식을 해결하고 다음 날 다시 그 버스를 타고 출발하는 독특한 시스템이었다. 다행히 당시 몸살기운은 많이 좋아졌고, 체한 것 같았던 속도 거의 회복되었다. 점심시간과 저녁시간 모두 현지인들과 함께 식당에 가서 어김없이 인제라를 시켜 먹었다.

 

 

ㄴㅁㅇㅎ 

 

<버스 이동 중 만난 사탕수수 파는 아저씨>

  

그리고 그 날 밤, 또 똑같은 증세로 아프기 시작했다. 화장실에 가서 몇 번이나 토를 했다. 속이 다 뒤집어 진 상태에서 토는 계속 나왔고 결국 화장실에 쭈그려 앉아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그리고 그제야 이것이 내가 무리해서 몸살이 난 것도, 음식을 급하게 먹어서 체한 것도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바로 ‘인제라’때문이었다.

악숨까지의 이동은 무슨 이유인지 하루가 더 늘어 2박 3일이 걸렸다.
악숨에 도착하는 2박 3일 동안 나는 버스 안에서 계속해서 고열에 시달렸고 속이 울렁거리고 복통이 와서 배를 붙잡고 고개조차 들 수가 없었다. 심지어 중간에 차를 세워 내려서 토를 하기도 했다. 눈물이 계속 흘렀고 버스를 타고 함께 이동했던 현지 사람들의 걱정과 위로조차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지금까지 7개월 동안 여행을 하면서 단 한 번도 지역음식 때문에 고생한 적이 없었는데,
‘도대체 왜 내 몸은 인제라를 거부하는가.’
이 문제는 지금까지도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이다.
그 뒤로는 나의 에티오피아 여행에서는 ‘인제라’는 없었다.

 

‘인제라. 넌 나와는 아닌가 보다.’

 

ㄴㅁㅀ 

 <a boy, Ethiopia>


‘에티오피아, 악마를 경험하다.’
Bahar Dar, Ethiopia


‘일어탁수’ 물고기 한 마리가 큰물을 흐리게 한다라는 말이 있다면,
‘일악인탁국’ 악한 놈 한 명이 나라 물을 흐리게 한다라는 말을 만들고 싶게 만든
‘그 놈’에 대한 이야기다.

나는 여행 할 때에 가능하다면 국제 네트워크인 카우치서핑을 이용하여 현지인의 집에서 묵어왔다. 지금까지 만났던 친구들은 모두 좋은 사람들이었고, 그 친구들 덕분에 많은 추억을 만들어왔다. 그래서 나는 카우치서핑에 대한 강한 신뢰감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날은 인터넷을 미리 사용하지 못해 카우치호스트를 구하지 못한 상태였다.
에티오피아의 북서부에 위치한 ‘바하르다르’ 도시는 에티오피아에서의 마지막 여행지였다.

 

ㄴㅁㅇㅎ 

<바하르다르 어느 대학의 졸업식 풍경, Ethiopia>

  

바하르다르에 도착해 숙소를 찾기 위해 동네 이곳 저곳을 걸어 다니고 있었다. 그때 한 남자가 나에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지낼 숙소 찾아요?”
“네, 찾고 있어요. 저렴한 곳 추천해 주실래요?”
그 남자는 뭔가를 한참 생각하더니 한 마디 한다.
“혹시 카우치서핑이라는 거 알아요? 진짜 도움이 필요하다면 우리 집에서 지내도 돼요.”
그가 먼저 ‘카우치서핑’이라는 단어를 내뱉는 순간, 나의 경계심은 마법처럼 사라져버렸다.
“카우치서핑이요? 당연히 알죠. 지금까지 여행하면서 카우치서핑을 얼마나 많이 이용해왔는데요. 카우치서핑 멤버예요? 정말 반가워요!”
아무리 그래도 오늘 처음 본 사람을 덜컥 믿고 집에 따라 가는 것이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런데 마침 그가 그런 내 표정을 읽었는지,
“걱정 말아요. 저 혼자 사는 거 아니고, 할머니, 부모님, 사촌동생들까지 다 같이 살고 있으니까.”
그 말을 들으니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그의 집으로 가보았다.
집에 들어서니 정말 그의 말대로 할머니, 부모님, 사촌 여동생들이 함께 살고 있는 집이었다.

그의 이름은 ‘토마스’였다.
토마스는 나에게 작은 빈 방을 내어주며 내 집처럼 편하게 지내라고 했다. 정말 고마웠다. 그와 동시에 나는 정말 운이 좋은 아이라고 생각했다.
가족들 모두 인상도 좋아 보였다. 그날 토마스는 나에게 맛있는 식사도 대접해 주었다.

 

 

ㅁㄴㅇㅎ 

<에티오피아에서 가장 많이 마셨던 아보카도 주스, Ethiopia>

 

보트투어사장이라는 그는 다음 날 내가 보트투어로 가는 길까지 배웅해 주었고, 투어를 마치는 시간에 맞춰 나를 기다려주기도 했다. 예의바르고 착한 토마스는 정말 좋은 친구였다. 그는 자신의 동네 친구들을 나에게 자주 소개시켜주었는데 그럴 때면 그 친구들은 토마스를 대장처럼 모셨고, 내 앞에서 토마스의 칭찬을 끊임없이 했다. 자연스럽게 나는 생각했다. ‘토마스는 친구들에게도 이렇게 인정받는 괜찮은 친구구나.’

그렇게 나에게 무한신뢰를 잘 쌓아오던 그가 어느 날 나에게 부탁을 했다. 자기가 지금 일 때문에 급하게 70달러정도가 필요한데, 카드가 문제가 생겨 작동하지 않아 돈이 안 뽑힌다면서 나에게 돈을 빌려줄 수 있냐는 것이었다. 그러면 내일 은행에 가서 바로 돈을 뽑아 갚겠다고 했다. 그를 의심할 이유는 전혀 없었다. 나는 알겠다며 가지고 있던 현금을 그에게 빌려주었다.
그날 밤, 토마스는 나에게 아름다운 일몰을 보여주겠다며 나를 선착장으로 데려갔다. 나는 가져간 아이폰으로 일몰사진을 찍었다. 아프리카여행을 하면서 아이폰을 공공장소에서 꺼낸 적이 없는데, 옆에 믿음직한 현지인 친구가 있으니 걱정 없이 핸드폰을 꺼냈다. 일몰을 다 본 후 우리는 집으로 돌아왔다. 자기 전 화장실에서 샤워를 했다. 그리고 나와서 잘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토마스가 갑자기 내 방을 노크한다.
“너 혹시 잃어버린 물건 없어?”
“잃어버린 물건? 없는데, 왜?”
“아니 아까 우리가 일몰 봤었던 그 근처에 내 친구가 있었는데, 우리가 떠나고 간 다음 어떤 사람이 그 자리에서 뭔가를 급하게 주어서 가는걸 봤다고 연락이 왔는데, 혹시 네가 뭘 흘렸나 해서 물어 보는 거야.”
나는 토마스의 말을 듣고 내 보조가방을 확인해 보았다.
그런데 아뿔싸. 내 가방에서 핸드폰이 사라졌다.
“이럴 수가, 내 아이폰이 사라졌어!”
토마스는 그럴 줄 알았다며 난리를 쳤다. 나는 그의 말을 철썩 같이 믿었다.
눈물이 나왔다. 꼼꼼하지 못했던 내 자신이 너무 한심하게 느껴져 스스로에게 화가 났다.

그 다음 날, 핸드폰을 잃어버린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이었다.
토마스가 오늘 친구들과 근처에 당일치기로 소풍이나 가서 바람이나 쐬고 오려고 하는데 기분전환 할 겸 같이 가자고 했다.
그의 친구들과 차를 타고 시내를 벗어나 잘 꾸며진 방갈로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친구들과 맛있는 음식도 먹고 노래도 들으며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분명 당일치기 소풍이라고 했는데 방갈로를 잡아서 놀 때부터 나는 뭔가 잘못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알아챘어야 했다.
해는 져갔다. 그런데 갑자기 토마스의 친구들이 뭘 두고 왔다면서 집에 갔다 오겠다고 한다. 그래서 나는 그 친구들과 함께 집에 가겠다고 했다. 그런데 토마스가 이 친구들은 어차피 집에 갔다가 와서 한 두 시간 뒤에 다 같이 집에 갈 거라면서 여기서 기다리자고 한다. 나는 그걸 또 믿었다. 젠장.
우리 둘을 남기고 간 그 친구들은 결국 돌아오지 않았다.

나는 토마스에게 말했다.
“나 집으로 갈래.”

한편의 공포영화가 시작된 것처럼 때마침 밖에는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고 있었다.

“비가 너무 많이 오잖아, 그리고 친구가 차를 가져가서 우리가 돌아갈 방법이 없어. 아마 친구들도 돌아오려고 했는데 비가 너무 많이 와서 못 오는 것 같아. 여기 있다가 내일 아침에 가자.”

정말 속으로 욕이 튀어나왔다. ‘이놈이 작정을 하고 나를 여기로 데려 왔구나.’
그런데 일반적으로 이런 상황에 닥친다는 상상을 하면 그 놈에게 욕을 퍼부으며 그곳에서 나오면 되는 일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정작 그 상황이 되어보니 그렇게 되지가 않았다.
그 이유는 첫째, 나는 여기가 어딘지도 모르며, 이렇게 비가 억수같이 내리는 상황에서 여기서 나간다 하더라도 집으로 돌아갈 방법이 없었다. 내가 여기 올 때 주변 환경을 봤을 때 이곳은 정말 구석에 박혀있는 곳이었고, 주변에 도로도 없었다. 정말 개인 차량이 없이는 움직이기 힘든 곳이었다.
그리고 둘째, 내가 화났다는 것을 이놈에게 그대로 다 보여주며 욕을 하고 싸운다고 하면, 이놈이 정말 어떻게 변할지 모를 일이었다.
이러한 여러 상황을 고려해 볼 때, 지금 할 수 있는 가장 최선의 방법은
이놈이 괴물이 되지 않게 침착하게 잘 타이르며 무사히 해가 뜰 때까지 버티는 방법이었다.
그 놈은 침대에 있었고, 나는 오늘 밤 절대 잠들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의자에 앉아있었다. 의자에 앉아 밤을 지새워야 했던 그 시간은 정말이지 고통스러웠다.

간절히 기다렸던 아침 해가 떠올랐고, 나는 집에 돌아올 수 있었다.
그 놈은 나에게 빌려간 70달러를 아직 갚지 않은 상태였고, 나는 그를 재촉했다.
그런데 그 날 이 후, 그가 집에 돌아오질 않는다. 나는 집에서 그를 기다렸다. 그런데 그의 사촌여동생이 조용히 나를 부른다.
“아.. 이런 말을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모르겠어요. 그런데 하는 게 맞을 것 같아서 불렀어요.”
그 뒤로 이어 나온 그녀의 말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토마스는 상습적으로 여행자에게 이런 식으로 물건을 훔치고 사라지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이전에는 몇 번 감옥에도 들어갔다 나온 전과까지 있었다. 때문에 가족들도 그에게 거리를 두고 무서워한다고 말했다. 사촌 동생이 해주는 얘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다리의 힘이 풀렸다. 그러면서 마치 흩어져 있던 퍼즐이 맞춰 지듯이 머리에서 정리가 되기 시작했다.
그는 카우치서핑 멤버도 아니었으며, 보트투어 사장도 아니었고, 사라진 내 아이폰도 그가 훔쳐 간 것이었으며, 토마스와 항상 어울려 놀던 그 친구들은 모두 내 앞에서 토마스를 신뢰 있는 사람으로 만들어 주기 위한 연기를 했던 것이었다.

얼굴이 벌게 지도록 분노가 치밀었다. 그리고 분노덩어리가 어느새 복수의 덩어리로 바꿔가고 있었다.
하지만 이미 일은 다 벌어진 후였다. 꼼꼼하게 의심하지 않은 나의 탓도 있지만 처음부터 악의를 품고 달려드는 놈을 당해 낼 방법은 없었다.
더군다나 하루 종일 집에 나타나지 않았던 그는 내가 잠시 밖에 나간 틈을 타서 집에 들어와 내 가방을 털기까지 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깊이 숨겨놓은 여권과 신용카드는 찾아내지 못했다.
(그 이유로 에티오피아여행 사진은 한 장도 없다.)
그는 정말 악마였다. 내가 악마를 제대로 만난 것이다.

ㄴㅁㅇㅎ 

 

<악마의 위장, Bahar Dar, Ethiopia>


그러면 이 상황에서 모든 사람들은 나에게 물을 것이다.
‘왜 모든 사실을 가족들에게 말하지 않았지?’
나도 그 생각은 당연히 했고, 그러려고 했다. 그런데 설상가상 그 때가 함께 사는 그의 할머니가 건강이 위독하셨고, 그 이유로 가족들 모두가 슬픔에 빠져 굉장히 예민해 있었다. 며칠 간 그 모습을 봐왔던 나는 그 상황에서 ‘당신 아들, 손자가 나에게 이런 짓을 했고, 이런 나쁜 놈입니다. 제가 손해 본 것을 대신해서라도 갚으세요.’ 라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나는 이제 떠나야 한다고 생각하고 가방을 가지러 집에 들어가려고 하는데 눈물이 멈추지가 않았다. 그런데 너무 서글프게도 집안에 들어가서 울 수가 없었다. 그래서 대문 밖에서 펑펑 눈물을 흘리며 한참을 울었다. 그냥 당장이라도 여행이고 뭐고 다 때려치고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그때였다. 내가 못 보던 한 아저씨가 집으로 들어오셨다. 그 분은 토마스의 삼촌이자, 아프신 할머니의 아들이었다. 일 때문에 따로 멀리 사시는데 위독하신 할머니의 건강 상태를 듣고 급하게 오신 것이었다.
그 분의 이름은 ‘페레케’였고, 페레케 삼촌은 나의 수호천사였다.
페레케도 토마스의 삼촌으로서 그의 전적을 다 알고 있었고, 가족들이 나를 토마스의 친구라고 소개하면서 페레케는 많은 것을 예측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가 잠시 시내에 나가면서 나를 부른다. 그리고 나를 근처 카페로 데리고 갔다.
“토마스의 친구라고? 무슨 일 없었어요? 다 말해 봐요.”
그 동안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혼자 끙끙 앓아오던 것들이 차분하게 물어오는 페레케의 질문에 모든 것이 눈물과 함께 터져버렸다. 나는 페레케에게 그 간에 있었던 모든 일들을 다 얘기했고, 페레케는 자신이 예상했던 것보다 더 심각한 이야기에 굉장히 충격을 받은 듯했다.
페레케는 당장 짐을 싸서 집에서 나오라고 했다. 페레케는 우선 혼자 지낼 수 있는 호텔을 잡아주었고 내가 잃어버린 것을 모두 다 보상해 주긴 힘들겠지만, 자신이 토마스를 대신해 진심으로 사과하고 싶다며 나에게 어느 정도의 돈을 쥐어 주셨다. 그리고 여기서 아디스아바바까지 버스를 타고 가려했던 나에게 항공권을 사 주셨다. 그 비행기는 바로 그 다음 날 새벽 아침 비행기였는데, 그 시간에 맞춰 택시를 타고 내가 묵는 호텔로 오셔서 함께 공항까지 가주셨다.
하지만 토마스에 대한 복수심은 여전했다. 처음에는 그가 나에게 했던 것처럼 똑같이 그 놈의 방에 있는 모든 물건을 다 훔쳐서 다른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것도 생각해봤고, 아니면 그의 물건을 다 불태워 버릴까도 생각했었다.
그런데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그것은 좋은 해결책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다면 나도 결국 그 놈과 똑같은 사람이 되는 것이니까.

밤새 고민한 끝에 나는 그에게 편지를 썼다.

‘토마스. 지금처럼 이렇게 사는 것은 너를 위해서도 좋지 않아. 다른 사람에게 피해주고 상처 줬던 것은 다 너에게 몇 배로 돌아 갈 테니, 지금이라도 이런 만행들을 멈췄으면 좋겠어. 부디 옳은 길로 살길 바란다. 그렇게 되길 기도할게.’

그리고 떠나기 전 공항에서 그 편지를 페레케에게 주며 꼭 토마스에게 전해 달라고 부탁했다.
하지만 그에 앞서, 나에게 진심으로 그를 위해 기도할 수 있길 먼저 기도해야 할 일이었다.

그 때의 정신적 스트레스와 심적 고통이 너무 커서 그 뒤로 언뜻언뜻 떠오르는 그때 기억에 한동안 많이 힘들었다. 하지만 그 아픈 경험을 통해서 조금 더 성숙해질 수 있었던 것 같다.
너무 힘들게 했고 큰 상처를 줬던 사람을 같은 방식의 복수가 아닌 그를 위해 진심으로 기도하려 노력했다. 사실 그 과정이 너무 힘들었지만 급하고 욱하는 성격인 내가 어떻게 그렇게 그 일을 이겨낼 수 있었나 싶다.
처음의 용서는 이처럼 힘들었을지 몰라도 내가 앞으로 마주할 용서들은 조금 더 담담하게 할 수 있을 것 같다.

페레케는 나와 헤어질 때 은팔찌 하나를 나에게 선물로 주었다. 그리고 계속해서 토마스를 대신해 사과를 했다.
그 뒤로 여행하는 동안 페레케가 준 팔찌를 단 한번도 빼지 않았다.
여행 중에 힘든 일이 생길 때마다 그 팔찌가 이렇게 얘기해 주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 때를 생각해봐, 지금 일은 아무것도 아니지?’

ㄴㅁㅇㅎ 


<Afri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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