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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여행자 클럽, 수스키 이야기 - 모스크바 첫 인상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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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전문가 칼럼

2015.07.10 조회수2418


russia

 

<러시아, 또다른 유럽을 만나다> 저자 서양수

 

글쓴이 소개

 

베낭을 메고 5대양 6대주를 누빈 여행가라고 나를 소개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현실은 낙타처럼 단조로운 삶을 사는 생계형 직장인이다. 휴가 한 번 내려고 눈칫밥에 밥비벼먹다가, 피천득의 ‘은전한닢’에 등장하는 거지처럼 아끼고 또 아껴서 어렵싸리 휴가를 떠나는 자유로운 영혼 코스프레 꾼이라고나할까.

 

russia

 

죽기전에 책 한 권 꼭 쓰고 싶다는 버킷리스트를 2년 전에 실현. ‘러시아, 또다른 유럽을 만나다’를 출판했다. 그게 인연이 되어 대한항공으로부터 광고모델 제의를 받고 엉겁결에 TV에 출연하기까지 했다. 이러다  CF스타되는거 아니냐는 주변사람들의 장난에 ‘아이 왜그러세요. 어쩌다 한번 나온건데’라고 말하며, 요즘은 피부관리실까지 다니며 부쩍 외모에 신경을 쓰고 있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일은 여행, 두 번째로 행복한 일을 글쓰기인지라 지금 이렇게 여행에 관한 글을 쓰는건 꽤나 신나는 일이다. 그렇게 설레는 맘으로 나만의 러시아 이야기를 풀어 보려 한다.

 

 

모스크바 첫인상

 

모스크바 첫인상  

 

“승객 여러분, 이 비행기는 약 10분 후에 모스크바 셰레메티예보 국제 공항에 도착하겠습니다. 좌석벨트 착용 상태를 다시 한 번 확인해주시고, 등받이와 테이블을 제자리로 해주시기 바랍니다.”

 

모스크바 첫인상 

   

300명의 익명성과 함께 공유한 아홉 시간. 긴 비행 뒤에 볼 수 있는, 약간은 상기된 얼굴. 누군가는 드디어 아늑한 고향에, 누군가는 일터에, 또 나와 같은 누군가는 여행을 위해 첫발을 내딛는 순간이다. 처음은 언제나 그렇듯, 기대와 설렘으로 가슴이 방망이질 친다. 공항의 커다란유리창을 통해 들어오는 햇살은 그야말로 화창 그 자체. 러시아를 여행간다고 하니, 의외로 거긴 춥지 않냐고 묻는 사람이 많다. “여름인데?” 내가 되묻자, “아프리카는 겨울도 덥잖아?”라며 반문한다. 아. 다행히 러시아의 여름은 춥지 않다. 게다가 여름의 모스크바는 백야가 한창이라 저녁 9시까지는 낮이나 다름없다.

 

 

모스크바 첫인상    

 

 

“엇! 저기 이노다!”

 

모스크바 공항을 나가자 이노가 우리들(나, 준스키, 택형, 설뱀)을 맞이해 준다. 모스크바에서 처음 며칠간 우리에게 숙소와 조식과 자동차를 제공해줄 이노. 우리가 벗겨 먹고 빨아 먹고 빼앗아 먹게 될 이노느님! 언젠가 인호가 인사차 던졌을 지 모를 ‘모스크바 한번 놀러와~’라는 말. 우린 그 말을 듣고 진짜로 러시아까지 찾아가버린 친구들 이었다. 가난하지만 구김살 없고 어쩐지 밥은 되게 많이 먹을것 같은 우리의 멤버들. 그렇게 키득 거리며 우리의 모스크바 여행이 시작되고 있었다.

 

모스크바 첫인상  

 

 

“잊지 말고, 술 사려면 10시 전에 사야 한데이!”

우리의 키득거림에 샘이라도 났는지, 이노는 우리에게 미션을 주고 도사처럼 떠나 버렸다. 이곳에서도 직장생활을 하는 이노는 우리와 풀타임으로 함께 할 수 없는 까닭이었다. 그 때 그 때 알아서 생존해야 하는 미션을 받고 덩그러니 남겨져 주위를 둘러보니 온통 러시아인뿐. 러시아니까 당연하다. 그런데 다른 유럽의 수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외국인이 없다. 동양인도 하나도 없다. 우주에서 유일한 외국인이 된 기분이랄까.어쩐지 어색하고 쑥스럽다.

 

 

모스크바 첫인상   

 

“진짜 한 글자도 못 알아보겠다.”

세계 3대 난어에 속한다는 러시아어. 그걸 글자로 풀어놓은 간판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우리를 노려본다. 익숙한 간판이 벽지와 같은 무의식의 영역이라면, 단 한 글자도 모르는 간판들의 행렬은 소음의 영역에가깝다. 그런 키릴 문자의 소음 속을 걷고 있다.

“참, 지금 몇 시야?”
“9시 40분!”

시간이 없다. 우리는 서둘러 마트를 향해 종종걸음을 쳤다. 러시아는 ‘보드카의 나라’라는 명성에 걸맞지 않게 늦은 밤 마트에선 술을 팔지 않는다. 다급한 사람이 언제든 술을 살 수 있는 편의점의 나라, 대한민국에 비하면 참으로 엄격하다. 이쯤 되면 술고래의 옥좌는 이제 그만 우리에게 넘겨야 하는 것 아닌가.

 

모스크바 첫인상  

  

“저쪽인 것 같은데?” 택형이 먼저 주류 진열대를 발견했다.
“그런데 저게 뭐지?” 폴리스라인처럼 노란 테이프로 진열대를 한 바퀴 둘러놓았다. 설마벌써 판매 금지 시간이 된 걸까? 아직 10시가 되려면 몇 분이 남았는데. 슬슬 불안해진 우리는 얼른 맥주 몇 병을 골라 들고 계산대 앞에 줄을섰다. 시계를 들여다보니 10시가 임박한 상황. 마음은 조급한데 계산대의 줄은 좀처럼 줄어들 생각을 하지 않는다. 이러다 정말 우리 술 못 사게 되는 거 아냐?

 

 모스크바 첫인상 

 

 

마침내 우리 차례. 그 순간 시계는 거짓말처럼 10시를 가리켰다. 우리는 애써 태연한 척하며 술병을 계산대에 올려놓았지만, 점원은 쏘아보며 술병을 치워버린다. 그랬다. 느려터진 점원의 계산 시간과 줄이 줄어드는 속도까지 주도 면밀하게 계산을 했어야 했다. 그래야 차디찬 기포가 퐁퐁 터지는 맥주로 오늘을 흡족히 마무리할 수 있는 거였다.

“그래서 결국 못 산 거야?”

뒤늦게 도착한 이노 앞에 난 대역죄인이 되어있었다. 여행에서 빠질 수 없는 재미가 바로 밤에 숙소에서 마시는 시원한 맥주인데, 난 술을 공수해 오는 미션에서 실패하고 만 것이다. 내가 내 죄를 알아 사약을 받아도 시원찮을 판이지만, 구김살 없는 우리 친구들은 금새 잊어 버리고 또 낄낄거리고 있었다. 다시 터지는 남자들의 수다. 으하하하 웃음소리가 커져갈수록 어쩐지 이곳 모스크바에서의 우리 지분도 커져 가는것 같았다.

 

 

모스크바 첫인상  

  

흥분과 설렘으로 한참을 떠들어대던 우린 모스크바의 야경을 보기위해 숙소를 나섰다. 이노의 차를 타고 ‘진짜 모스크바’를 향해. 번화한 시내로 깊숙이 깊숙이 들어갔다. 차창을 통해 보는 모스크바의 밤. 거리에 늘어선 묵직하고 낮은 석
조건물들, 그 건물 하나하나에 새겨진 정성스런 문양 조각들이 나트륨 등의 불빛에 온통 주황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선명히 빛나는 서울의밤이 온 세상을 촘촘히 다 비추는 서사성 짙은 소설이라면, 모스크바의밤은 시詩적이다. 나트륨등이 켜져 있는 부근에만 드문드문 빛나는 풍경 속에서 과감한 생략과 운율이 있다. 도심임에도 건물이 높지 않고, 불빛도 밝지 않아 깊숙이 들어갈수록 나른한 기분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 주황빛 도시의 매력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것은 예쁜 소녀들이었다. 〈보그〉나 〈싱글즈〉 같은 잡지에서 막 걸어 나온 듯한 소녀들의 외모와 패션 감각은 모스크바의 분위기를 압도하기에 충분했지만, 사실 이들보다 더 충격적인 것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남자들. 여신 같은 그녀들 옆에선 남자들은 하나같이 패션 센스가 없다. 뭐대충 건빵바지에 다 늘어난 티 같은 걸 걸치고 나왔는데, 심지어 외모도 별로다. 그런 남자가 <보그> 모델과 얽혀 있는 모습이란.

  

모스크바 첫인상  

  

“어어! 저기 또, 또!”
키스 서바이벌 프로그램이라도 출연했는지 여기저기 하트가 날아 다닌다. 여긴 뭔가 전생에 지구를 구한 사람들의 모임이 있는 게 틀림없다. 러시아의 딱딱하고 무표정한 이미지 때문에, 그리고 공산주의의 이미지 때문에 애정 표현에 보수적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나의 판단이 틀렸다. 무표정한 얼굴로 정말 적극적이다.

“휴.”
우리는 잠시 말없이 낮은 탄성만 주고받다가 곧 마음을 고쳐먹기로 한다. 거꾸로 생각해보면, 이곳은 누구라도 수많은 보그 모델들을 만날수 있는 기회의 땅. 러시안 드림이 실현되는 곳이 될 수도 있을 테니 말이다. 시원한 강바람을 맞으며 걷다가 파트리아르시이 다리에 걸터앉아 본다.

 

모스크바 첫인상   

 

우리는 얼마나 많은 오해와 편견들을 안고 살아갈까. 현실과는 거리가 있을지도 모르는,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도 모르 는 막연한 이미지들 속에서 현실에는 있지도 않은 나만의 세상을 재단하며 말이다. 술에 한없이 관대할 것 같지만 술을 살 수 있는 시간이 엄격하게 정해져 있고, 무뚝뚝하고 차가울 것 같은 사람들이 거리에서 또 대중교통 안에서 거침없이 애정 표현을 하는 러시아.

 

이곳에서 앞으로 얼마나 많은 색안경들이 벗겨질까. 진실을 향해 깊숙이 들어가는 기분. 세상이 모르는 나만 아는 비밀을 하나씩 알게 되는 우쭐함이랄까. 여행이 주는 또 하나의 선물과 함께 러시아에서의 첫날 밤이 지나고 있었다.

 

 모스크바 첫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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